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타격이다. 투자 제한 유예 조치가 10월 종료하면 자칫 중국 기존 시설에 대한 투자마저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미국 당국의 중국 제재 수위를 보면 한국 기업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각각 중국에 33조원, 35조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시설은 첨단 공정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처지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128단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10나노 중후반대 D램과 96·144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업계 최첨단 수준인 230단 낸드플래시와 10나노 초반대의 D램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노후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단수가 클수록, D램은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성능이 좋다.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전무는 “첨단 공정 전환이 불가능해질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가 당장 내년부터 2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향후 수년 안에 줄어든 중국 생산 물량을 대체할 대규모 신규 생산시설을 지어야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다롄 공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측에 지난해 1차 대금으로 70억달러(9조1000억원)를 지급했고 2025년 잔금 20억달러를 지급해야 하지만, 공장을 제때 업그레이드하지 못할 경우 상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인텔이 미국 당국의 중국 제재 방침을 미리 알고 다롄 공장을 매각한 것 아니냐는 ‘인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 본부장은 “반도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생산라인 공정 전환까지 늦어지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