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꼽혔던 JOLED가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JOLED는 지난 27일 공식 성명을 내고 “글로벌 디스플레이 수요 정체와 가격 경쟁 격화로 회사를 둘러싼 상황이 어려워졌다”며 “이사회 결정에 따라 도쿄지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JOLED는 지난 2015년 파나소닉·소니·재팬디스플레이(JDI) 등 기업과 정부 주도 펀드인 일본산업혁신기구(INCJ)가 공동 출자하고, 파나소닉과 소니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 부문을 합쳐 설립한 기업이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JOLED의 누적 부채 규모는 337억엔(약 3350억원)이다. JOLED는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보유 기술은 공기업 성격의 JDI에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노미시와 지바현에 있는 JOLED의 생산 라인은 폐쇄한다. 일본이 자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부활을 꿈꾸며 출범시켰던 ‘민관 연합군’이 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신음하는 디스플레이 기업들 시장 침체에 도미노 파산 우려… 삼성·LG 등 강자독식 될듯
일본은 2000년대 중반까진 글로벌 디스플레이 1위국 자리를 지켰었지만,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기술에 발 빠르게 투자한 LG·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에 추월당하며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JOLED는 디스플레이 경쟁이 LCD에서 OLED로 전환하는 시점에 한국 기업 기술보다 20~30% 효율적이라는 ‘잉크젯프린팅’ 기술을 내세우며 한때 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제대로 된 판매처를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첨단기술 투자에 매진했던 JOLED는 경기 침체에 취약한 구조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JOLED는 잉크젯프린팅 기술로 PC에 주로 사용되는 중형 디스플레이만 양산에 성공했고, TV나 스마트폰에 알맞은 대형·소형 제품은 대규모 제조가 불가능했다. 닛케이는 “스마트폰과 TV에 사용되는 OLED 패널은 삼성과 LG가 독식하고 있고, 글로벌 PC 수요 감소로 JOLED와 같은 중형 패널 생산자는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JOLED의 파산 신청을 경고 메시지로 보고 있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의 3강인 LG·삼성과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 BOE를 제외한 기업들의 도미노 파산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JDI는 최근 8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한데다, 지난해 10월 중국 생산라인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대만 디스플레이 기업 AUO는 지난해 2분기부터 적자를 이어왔으며, 올 1월에는 고연령·고연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문제는 산업을 이끄는 선두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TV용 OLED 시장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TV 수요 하락으로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1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에 LG디스플레이는 27일 LG전자로부터 1조원 규모 자금을 긴급 수혈받기도 했다. BOE는 지난해 1~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순이익은 같은 기간 74% 폭락했다. 주력인 TV와 PC·노트북·태블릿 등 IT 기기 전반의 수요가 급격하게 하락한 여파다.
◇디스플레이, 강자 독식 시장으로
전문가들은 “앞으로 디스플레이 산업도 메모리 반도체처럼 극소수 선두 기업만 살아남는 형식으로 재편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미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출혈 경쟁 끝에 기술 우위를 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체제로 재편됐다.
28일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TV 시장은 저가형 제품인 LCD TV의 단가 하락과 수요 감소로 2018년 이후 처음 1000억달러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코로나 시대 늘어났던 디스플레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프리미엄 제품인 OLED TV는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OLED 패널 시장을 지키면서, 차세대 기술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BOE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