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3년간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를 거듭하며 틀어막아 왔던 자영업자와 기업들의 빚 폭탄이 위험 수위에 다가가고 있다. 시중은행부터 대부업체까지 각 금융회사에서 일제히 연체율이 바짝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상 연체 상태에 빠져 부실채권으로 분류돼야 할 대출까지도 거듭된 상환 유예로 장부상 정상채권으로 분류됐던 금융권의 ‘깜깜이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각 금융사의 경영 실적에도 비상이 걸렸다.
◇저축은행 5%, 대부업체 10%...고개드는 연체율
1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최근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카드사들의 연체율(30일 이상 연체된 채권 비율)이 일제히 1%를 넘어섰다. 업계 1위 신한카드 연체율이 1.37%를 기록한 것을 비롯, 삼성카드(1.1%), KB국민카드(1.19%), 하나카드(1.14%), 우리카드(1.35%) 등의 연체율이 모두 1%를 넘어섰다. 시중은행에서 대출 한도가 꽉 찼거나 신용도가 낮은 다중채무자들이 카드빚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카드 연체율은 서민경제의 부실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한다. 한 카드사 담당자는 “통상 연체율이 2%에 도달하면 위험 수준으로 보는데, 상승 추이가 가팔라서 경계심을 갖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연체율이 높아지자 각 카드사는 수천억원대 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한 돈)을 쌓으며 부실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카드사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적게는 -9%대(신한·삼성카드)에서 많게는 -63%(하나카드)를 기록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연체율도 각각 5%와 10%를 넘어섰다. 최근 저축은행중앙회는 올해 1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 평균 연체율이 5.1%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연체율이 5%대를 넘어선 것은 2016년(5.8%) 후 처음이다. 작년 말 3.4%였던 연체율이 올 들어 1.7%포인트 급등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 2월 기준 25개 대형 대부업체의 평균 연체율은 10%를 기록했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6.5%) 대비 3.5%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가계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신용위험도가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최고로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금융회사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를 보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있는 가계에 대한 국내 은행의 2분기(4~6월) 가계 신용위험지수 전망치는 42로 집계됐다. 이는 카드사태가 불거졌던 2003년 2~3분기(44)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비은행 기업 대출 연체도 7년 만에 최고
가계뿐 아니라 기업 대출도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기업대출 현황’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221조6000억원,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카드사 등 비(非)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652조4000억원으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4분기 말 대비 3년 새 각각 34.8%와 82.6% 늘었다.
증가세가 더욱 두드러진 비은행 금융기관 기업대출 연체율(30일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2.24%로 2016년 1분기(2.4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각 시중은행도 다가오는 부실에 대비해 1분기 대손충당금 둑을 두둑이 쌓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가 1분기에 적립한 대손충당금은 총 1조7338억원으로 작년 1분기(7199억원) 대비 2.4배 많다.
지난 3년간 이어진 코로나 대출 이자상환 유예 조치가 9월에 종료됨에 따라 각 금융회사의 연체율과 부실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각 은행들이 대출 부실 관리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대출 관리 강화에 나서는 등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