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운영하던 음식점을 지난해 닫은 박모(42)씨는 올 초부터 쿠팡·마켓컬리 같은 대형 이커머스(온라인 상거래) 업체의 물류 창고에서 상품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밤에는 틈틈이 대리운전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일주일에 60만~80만원 정도를 번다. 박씨는 “빚 때문에 돈 벌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며 “식당 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수입은 더 짭짤하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드는 40~50대 중·장년층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대출 이자가 늘고,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진 데다 경기 둔화 조짐마저 나타나자 줄어든 소득을 알바로 보충하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4050 중·장년 알바 급증
17일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에 따르면, 지난해 40대와 50대의 분기별 아르바이트 지원량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평균은 각각 228.9%, 258.5%에 달한다. 전체 연령대 증가율(28%)의 8~9배나 된다. 40대와 50대의 알바 지원량은 올해 1분기에도 각각 294.3%(36만216→142만344건), 100.3%(21만3803→42만8202건) 늘었다. 전체 연령대 증가율(47.3%)을 훌쩍 뛰어넘는다.
‘중·장년 알바 붐’은 알바 시장의 주력인 10~20대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10대와 20대의 분기별 아르바이트 지원량 증가율 평균은 각각 36.4%, 18.5%에 그쳤다.
40~50대의 아르바이트 참여율은 배달 라이더나 대리 기사 같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 확산으로 3~4년 전부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여파로 중·장년층 상당수가 안정적 소득 기반을 잃고 알바 시장에 떠밀려 나왔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중·장년 알바’ 지원량이 지난해 2분기를 기점으로 폭증했다는 것이다. 40대 알바 지원량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작년 1분기에는 18.6%에 그쳤으나 2분기에 138.4%로 치솟았고, 이후 3분기 393.0%, 4분기 365.4%, 올해 1분기 294.3% 등으로 고공 행진하고 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지난해 2분기부터 전례 없는 40~50대 아르바이트 폭주 현상이 나타나 ‘중·장년 전용관’을 따로 개설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물가·금리·경기 트리플 충격에 N잡 폭증
지난해부터 중·장년 알바가 폭증한 것은 금리 인상과 고물가, 경기 둔화 등 트리플 충격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필품 가격과 유류비 등은 껑충 뛰고, 갚아야 할 대출 이자는 늘어나는데 월급은 찔끔 오르자 부업이나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42)씨는 월급에서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줄면서 지난해 8월부터 퇴근 후 2~3시간씩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씨는 “임금은 제자리인데 지출이 늘어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박모(46)씨도 대기업에 다니지만 대학생과 재수생 자녀의 학비 부담이 늘어나자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집 근처 빵집에서 영업 마감과 업장 청소를 돕는다. 박씨는 “월급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그나마 퇴근 시간이 보장돼 추가로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40~50대가 가장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5개 업종은 물류 창고에서 상품을 분류·정리하는 작업인 ‘포장·품질 검사’를 비롯해 일반 음식점·편의점 근무, 매장 관리·판매 등이었다. 아르바이트 시장의 주축인 10~20대의 5대 선호 업종에도 일반 음식점·편의점 근무, 매장 관리·판매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한정된 자리를 두고 세대 간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금리·경기 트리플 충격이 실질 소득을 어떻게든 늘려야 하는 중·장년층을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라며 “제조업 등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르바이트 시장의 고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