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위원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 풀기보다 규제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같이 규제가 강한 국가의 규제를 합리적 수준으로만 바꿔도 매년 성장률을 1.4~2.1% 정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기자

“대대적인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돈을 푸는 것보다 규제 개혁이 더 급한 일입니다.”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지낸 최병선(70)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23일 “우리나라처럼 규제가 강한 국가가 규제 수준이 비교적 합리적인 국가로 바뀌게 된다면 매년 경제성장률을 1.4~2.1% 정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세계은행의 연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 지표들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 경정 예산 편성 등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규제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규제학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지냈고, ‘정부규제론’ ‘행정개혁의 신화와 논리’ ‘규제 vs 시장’ 등의 저서를 통해 규제 개혁을 주장해왔다.

-지난 1년간 정부의 규제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나.

“방향은 그런대로 잡고 있다고 본다. 다만, 총리가 단장을 맡고 주로 퇴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규제혁신추진단을 (별도로) 신설한 것은 아쉽다. 규제개혁위원회라는 25년의 역사가 있고 관록이 붙은 기구에 힘을 더 실어주면 좋았을 것이다. 퇴직 공무원들을 규제 개혁 전문가로 보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공무원들은 새로운 해결책보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익숙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규제 개혁이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는 뭔가.

“1998년 초 외환 위기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이 규제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규제의 50%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1년 만에 규제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놀랍게도 우리 사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공무원의 의식과 행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도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최저임금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결국 불발됐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고용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었지만, ‘최저임금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반대가 컸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나.

“대통령과 장관들이 시장을 공부하면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 시장과 싸우고, 이기지도 못할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 ‘시장의 실패’를 해결한다면서 ‘정부의 실패’를 늘려나갈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소득 주도 성장 등이 단적인 사례다. ”

-규제 개혁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시각도 있다.

“규제 개혁의 명분으로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해외 투자 유치 등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애로 사항, 민원 해결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기업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더 강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규제 개혁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미국의 연구 사례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연간 규제 비용은 약 300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규제 개혁에 쓰는 예산은 200억~300억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인건비이고 연구비는 미미하다. 제발 한번 3000억원만 (규제 개혁 예산으로) 써보자고 오래전부터 주장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