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건설·플랜트 등 막대한 발주 물량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쳤다. 하지만 최근엔 글로벌 기술 기업에 직접 투자하고, 수소·SMR(소형 모듈 원전) 등 친환경 에너지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산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6000억달러(약 780조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대표적이다. PIF와 중국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2월 중동·아시아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모았다. 이 펀드 창업 멤버인 제리 리는 블룸버그에 “사우디는 매우 큰 시장을 갖고 있고, 중국에는 전 세계로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기술 회사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PIF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도 450억달러(약 58조7000억원)를 투자했다. 이 자금은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와 미국의 배달 앱 ‘도어대시’ 등에 투자됐다. PIF는 지난해에도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뉴욕 증시의 기술주에 408억달러(약 54조원)를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엔 홍해 인근에 추진 중인 미래형 도시 ‘네옴시티’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서울의 44배 면적인 이 도시 건설을 위해 1조달러(약 1305조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미국·중국 등 전 세계 건설·에너지 기업들이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력과 삼성물산 등이 함께 네옴시티에 그린 수소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현대건설 등 한국 건설 회사들도 공사 수주를 따내고 있다.

‘오일 머니’는 국내에도 흘러들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PIF와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네이버는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전환(DX) 사업에 참여하는 등 현지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회사 ‘아람코’는 국내 자회사인 에쓰오일을 통해 약 9조30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 설비를 짓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