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19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에 원·엔 환율이 900원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오전 8시 23분 기준 100엔당 897.49원을 기록했다./뉴스1

19일 100엔당 원화 환율이 800원대에 진입하며 8년 만에 ‘신(新) 엔저 시대’가 열렸다.

이날 오전 8시 23분 100엔당 원화 환율은 897.49원으로 고시됐다. 100엔당 원화 환율이 800원대까지 떨어진 것은 2015년 6월 25일(897.91원) 이후 8년 만이다.

국내에선 값이 싸진 엔화를 사 모으거나, 싼 엔화를 무기로 일본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엔화에 투자했다가 엔화가 더 약세로 가면 손실을 보겠지만, 거꾸로 엔화가 강세로 방향을 바꾸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0년간 세 차례 엔저

지난 20년간 100엔당 원화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졌던 적은 2006~2007년과 2015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세 차례 있었다.

2006~2007년은 지금처럼 미국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던 때였다. 미 연준이 2004년 1%이던 기준금리를 2006년 7월 5.25%로 급격히 올리는 동안, 일본은 0%대 금리를 고수했다. 이 때문에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나 수익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 수요가 폭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당시 엔캐리 트레이드는 23조2000억엔(약 210조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에는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수혜를 입고 수출이 늘며 달러 자금이 쏟아졌다. 달러 대비 엔화 약세에 원화 강세가 맞물리면서 100엔당 원화 환율은 746원까지 떨어졌다.

2015년은 대대적인 돈 풀기를 벌인 아베노믹스가 한창일 때다. 2012년 아베 내각이 들어서고 2013년 구로다 하루히코 BOJ(일본은행) 총재가 취임하면서 양적·질적 금융 완화(QQE)를 추진, 돈 풀기 공세에 엔화가 급격한 약세를 보였다.

이번에도 2006~2007년, 2015년 상황과 비슷하다. 미국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고,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면서 돈을 풀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여기가 바닥? 더 떨어지나?

현재 엔화는 주요 31국 중 마이너스 금리(선물환 3개월 수익률 기준)인 유일한 통화다. 당장 엔화를 달러로 바꾸면 연 5.6% 넘는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 말 대비 현재 엔캐리 트레이드는 48% 급증했다. 권영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본부장은 “엔캐리가 절정이었던 2007년엔 미치지 못해도, 우에다 가즈오 신임 BOJ 총재가 당분간 정책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해진 만큼 엔캐리 트레이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JP모건 등 많은 해외 투자은행(IB)은 앞으로 BOJ가 점진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나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것임엔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시간이 걸려도 엔화는 다시 강세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20년간 100엔당 원화 환율 평균치는 1077원인 만큼, 이 수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엔화 사 모으기, 일본 주식 직접투자

국내 투자자들은 엔화 사 모으기에 열심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 4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4월 말 대비 이달 15일 현재 40% 늘어난 8110억엔(약 7조3300억원) 규모다.

일본 증시 투자에 대한 관심이 꿈틀대고 있는데, 다시 크게 늘어날지 관심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3년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투자 규모는 1조6204억원, 미국 주식은 1조804억원으로 일본 투자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주식이 3조8800억원, 미국이 78조원으로 큰 격차로 뒤집혔다. 최근 일본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회사원 윤모(39)씨는 “그간 일본을 성장이 멈춘 나라로 여겼는데, 최근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다시 각광받는 것을 보고 투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