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A(28)씨는 이달 초 카드 대금을 낼 돈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연휴와 가족 행사가 많았던 지난 5월에 평소보다 지출을 더 했더니 카드 값이 30만원쯤 모자랐던 것이다. 사회생활 경력이 짧고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A씨의 연체를 막은 것은 이 체인점이 작년부터 알바생들을 위해 복지 제도로 도입한 가불(假拂·급여를 미리 주는 것) 서비스였다. 월급의 50% 내에서 월 130만원 한도로 횟수 제한 없이 돈을 미리 빼서 쓸 수 있는 제도다.
A씨가 스마트폰에 가불 제휴 업체인 ‘페이워치’ 앱을 깔고 회사와 급여 계좌를 인증한 뒤, 필요 금액을 입력하자 곧바로 돈이 입금됐다. 고용주와 접촉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됐다. 월급날엔 가불 금액과 인출 수수료(건당 700원)를 뺀 나머지 금액이 통장에 꽂혔다. 사실상 ‘무이자’로 돈을 당겨 쓴 셈이다. A씨는 “소액 대출이나 카드 리볼빙을 이용했다면 연 20%에 가까운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을 텐데 가불 덕분에 비용을 아꼈다”고 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 끄는 가불 서비스
모아 놓은 재산이 없어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 비대면 ‘가불’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주로 20~30대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편의점(CU)과 영화관(CGV), 커피 전문점(투썸플레이스), 식음료(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매드포갈릭·맘스터치 등) 업종 위주다. 디저트 카페 ‘노티드 도넛’은 최근 파티셰 채용 공고를 내면서 월 최대 100만원의 가불을 대표 복지 혜택으로 내걸기도 했다.
젊은 직원들 반응은 뜨겁다. 한 회사의 경우 가불 제도 도입 이후 3개월 만에 3000여 명(전 직원의 18%)이 가불 서비스를 이용했다. 편의점 CU는 지난달부터 전국 1만7000개 점포(직영점+가맹점) 알바생들에게 가불 혜택을 주고 있다. CU 상생협력팀 최민지 책임은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 놀랐다”며 “지금껏 시도한 다른 복지 제도들에 비해 월등한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 서비스를 도입한 다른 회사의 경우 가불제 도입 이후 104%였던 이직률이 26%로 뚝 떨어졌다.
◇이용자 40%, 한 달에 5회 이상 가불
금융 이력이 짧은 청년층은 금융권 대출 시 금리나 한도 등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게 비대면 가불이다. 요즘 젊은 층의 가불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다르다. 조강연 페이워치 부대표는 “부탁해야 받을 수 있다기보다는 내가 일한 대가를 받아가는 정당한 권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남 눈치 볼 필요 없는 비대면 특성상 ‘소액’을 ‘자주’ 당겨쓰는 모습도 뚜렷하다. 페이워치에 따르면 한 달에 5회 이상 자주 가불을 받는 이용자가 41.7%, 1회당 평균 10만원 이하를 가불한 이용자가 78%에 달했다.
가불의 주된 용도는 병원비나 축의금 등과 같은 긴급 자금(61%)이었고, 식료품 구매 등 생활비 목적도 32%나 됐다. 이들의 절반가량(43%)은 2금융권 이용조차 어려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였다. 가불이 벼랑 끝 청년들에게 경제적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IT 전당포 이용도 늘어
단기 소액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은 수중에 있는 물건을 들고 ‘전당포’를 찾기도 한다. 법정 최고금리(연 20%) 수준의 높은 대출 금리가 적용되지만 짧게 쓰면 부담이 덜한 데다 직업 등 신용도와 무관하게 돈을 빌릴 수 있고, 이용 흔적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맡기고 돈을 빌리는 IT 전당포가 인기다. 예컨대 노트북을 맡기고 20만원을 빌린 뒤 한 달 후에 이자(월 이율 1.66%) 3320원을 얹어 갚고 물건을 되찾는 방식이다.
전자 기기는 중고 시세의 65~70%까지 대출이 가능한데 다른 물품에 비해 감정가 계산이 쉬워 10~15분 안에 초스피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강남캐피탈대부 상담사는 “1년 전부터 20~30대 고객이 급증했다”며 “현재는 월 고객의 85%를 차지할 정도”라고 했다. 높아진 인기에 전자기기만 취급하는 프랜차이즈식 IT 전당포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방문 매입, 택배를 활용한 비대면 감정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