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로 12년 차를 맞은 국내 알뜰폰 서비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다. 4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설비 투자 의지가 있는 알뜰폰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동시에, 중소 알뜰폰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알뜰폰 가입자 수 산정 방식을 바꿔 통신 3사의 알뜰폰 자회사 점유율 제한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이달 초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나선 이유는 알뜰폰의 국내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이 18%(4월 기준)까지 오르는 등 규모가 커졌지만, 상당수의 업체들이 여전히 통신 3사의 요금제를 ‘단순 재판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소 알뜰폰 업체들은 평균 6개월간 요금이 무료인 ‘0원 요금제’ 등 자구책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통신 3사의 영업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업계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시대에 통신비를 아끼려고 알뜰폰을 쓰는 소비자가 1400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아직 서비스 차별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뜰폰 육성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설비 투자에 적극적인 알뜰폰 육성”

알뜰폰 정보 제공 사이트 ‘알뜰폰 허브’에 따르면 현재 판매되는 알뜰폰 요금제는 약 1500개에 달한다. 기본 제공 데이터 11GB(기가바이트)인 5G 요금제를 검색해보니,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링크(3만3000원), 국민은행의 KB리브엠(3만9600원), 중소 알뜰폰 이야기모바일( 3만6300원) 등이 나왔다. 해당 요금제는 모두 SK텔레콤의 통신망을 쓰고, 약정 없이 음성·통화가 무제한이다. 통신 3사 자회사나 금융권 알뜰폰끼리는 물론, 중소 알뜰폰의 요금제와 비교해도 몇 천원의 금액 차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다를 게 없다. 그나마 대기업 자회사들은 고객센터 운영, 멤버십 도입 등 혜택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실상 통신 3사 따라잡기에 불과하다.

이에 과기정통부가 이달 초 발표하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에는 경쟁력 있는 알뜰폰 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설비 투자 의지가 있는 알뜰폰 업체에 도매대가 인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대부분 알뜰폰 업체들은 과금, 가입자 정보 관리 등에 필요한 전산 설비가 없어 자체적으로 요금제를 설계할 수 없는데, 정부가 ‘풀MVNO(전산 설비를 갖춘 알뜰폰)’를 육성해 자체 요금제 출시 등 서비스 차별화 의지가 있는 알뜰폰 업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도 최근 간담회에서 “통신 3사와 경쟁이 가능한 알뜰폰 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동안 알뜰폰 업체들은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쓰는 대신 망 사용료(도매대가)를 내고, 여기에 마진을 얹어 소비자들에게 요금제를 판매해왔다. 도매대가는 정부가 통신망 의무 제공 사업자인 SK텔레콤과 매년 협상해 결정한다. 알뜰폰 업체들은 도매대가가 정해지면 일부 마진을 추가해 소비자에게 되팔고 ‘안전 마진’을 챙기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업체는 정부가 알아서 도매대가를 낮춰주기 때문에 계속 마진을 챙겨 갈 수 있다”며 “최근에 시장에 진입한 금융권 알뜰폰이든, 10년 넘은 중소 알뜰폰이든 굳이 큰돈을 들여 설비 투자를 하거나, 서비스 혁신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통신 3사 알뜰폰 자회사 점유율 제한도 강화

통신 업계에선 가입자가 1400만명에 달하는 알뜰폰의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경쟁력을 갖춘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은 “현재 40여 개의 중소 알뜰폰 업체는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사업자들끼리 합종연횡을 하는 등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든 알뜰폰 업체에 의무적으로 통신망을 제공하다 보니 ‘쉬운 돈’을 노린 영세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서비스 차별화 의지가 있는 업체에만 통신망을 제공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선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알뜰폰 업체를 지원해주는 동시에 통신 3사 자회사의 점유율 제한을 강화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회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차량용 회선을 통계 산정 시 제외해, 통신 3사 자회사의 영업에 제한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적으로 통신 3사 자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알뜰폰 시장의 50%를 넘지 못하지만, 통계에 차량용 회선 등 IoT(사물용 인터넷)가 포함돼 30%대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새로운 알뜰폰 업체의 성장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 통신 3사 자회사의 성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