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결혼식을 앞둔 권모(37)씨는 조만간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아파트를 살 예정이다. 본인 명의로 주택담보대출을 일으키고, 모자라는 금액은 배우자가 신용대출로 끌어오기로 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기혼자가 되면 두 사람의 소득이 7000만원이 넘어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씨는 “결혼해 소득이 늘면 대출은 줄어드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
작년 겨울 결혼식을 치른 정모(35)씨는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를 전세로 얻을 때를 떠올리면 입맛이 쓰다. 본인과 예비신부의 소득이 6000만원이 넘어 신혼부부용 ‘버팀목 전세 자금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고, 본인 단독 명의로 일반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금리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대출 한도가 3억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줄어든 게 타격이 컸다. 정씨는 “서울 전세금을 생각하면 1억원가량의 대출로는 작은 빌라밖에는 구할 수 없다”며 “맞벌이 부부는 사실상 정책 금융을 이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11일 신혼부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금리 주택 대출 상품인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의 소득 요건을 상향하는 내용의 ‘결혼 페널티(불이익) 정상화’ 정책을 발표했다. 대출이 나오는 부부 합산 연 소득 기준을 디딤돌 대출은 현행 7000만원 이하에서 최대 1억원까지, 버팀목 대출은 현행 6000만원보다 상향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금액과 시행 시기는 추후 당정협의를 통해 확정한다.
주택도시기금의 두 상품은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연 1~2%대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소득 요건이 까다로워 ‘결혼 페널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결혼 전 혼자일 때는 얼마든지 대출이 가능했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 합산 소득이 올라가면서 대출이 막혀서다. 이에 혼인신고를 미루고 미혼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부부 각자 주택 청약을 넣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발표됐다. 현재 부부당 주택 청약은 1회만 신청이 가능한데, 앞으로는 부부가 각자 1회씩 청약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
이날 행사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가상 결혼식의 주례를 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김 대표는 “그동안 위장 이혼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위장 미혼’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며 “결혼이 페널티가 아닌 보너스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1년 내내 이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고 했다.
이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2030 표심 잡기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출 문턱을 낮추면 집을 살 수 있는 2030 세대’에 집중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출을 조여 진입 장벽을 높여 놓은 상황에서, 집값은 크게 올라 좌절감이 상대적으로 큰 계층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