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도박하러 강원도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주식어플 깔고 베팅하는 게 더 짜릿하고 재밌으니까요.” “주말엔 증시가 안 열리니 너무 지겹고 심심합니다. 밤마다 내일 장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중국발 부동산 위기, 미국발 채권금리 폭등 등 잇단 악재로 시장 긴장감이 커지고 있지만, 개인 투심만큼은 ‘불사조’다. 18일에도 개인은 코스피·코스닥에서 5900억원 어치 주식을 사들이며 나홀로 매수 모드를 지속했다. 강력한 개미 화력에 이날 상한가(30% 상승) 종목은 11개나 나왔다. 이날 장중 한때 코스피는 1% 넘게 빠지기도 했지만, 개미군단 방어 작전이 먹히면서 전날보다 0.6% 하락한 2504.5에 마감했다.
비단 이날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 증시는 해외 악재에도 크게 출렁이지 않는다. 개미군단이 출동해 구조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올해처럼 개인들이 주식시장을 주도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서재영 NH투자증권 상무는 “올해 한국 증시에선 역사에 없었던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면서 “인생 역전을 의미하는 10배 급등주(텐배거)들이 대거 쏟아졌고, 기업 가치로 접근하는 전문가 집단(애널·매니저·외인 등)을 누르고 개인 투자자들이 승전보를 울렸다”고 말했다.
☑️“벼락거지 될라... 빚투 1년래 최대”
“고물가로 통장이 바닥났는데, 다들 총알이 어디서 나서 이렇게 주식을 사는 건가요?”
올해 국내 증시에서 개인들의 주식 순매수 금액은 4조6500억원이었다. 그런데 개인들이 주식에 베팅한 돈은 은행 통장에서 빼낸 현금이 아니라, 대부분 ‘빚’이었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주식 빚투 규모는 4조원 늘어났다.
대출 끼고 투자하는 부동산의 자산증식 성공 매커니즘이 주식 빚투에 이식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 빚투는 기세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신용융자잔고는 20조5570억원으로, 최근 1년래 최고치였다.
빚내서 투자하면 대출 이자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하니까, 고수익·고위험 주식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이수정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전후로 경제와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투자자들은 이에 적응했고, 자연스럽게 도파민(쾌락 호르몬)을 유발하는 고변동 주식을 선호하게 됐다”면서 “놀랍게도 도파민 유발 주식이 올해 압도적인 초과 성과를 달성하면서 이런 매매 패턴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고수익·고위험 주식은 변동성이 높으면서 이익은 불안정하고 기업가치 대비 가격이 비쌀 확률도 높다. 한마디로 나쁜 주식이란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모래알같은 개미들이 한마음이 되어 매매하면서 오히려 고수익·고위험 주식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메리츠증권 분석에 따르면, 올해 표준편차가 큰 상위 2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302%였는데, 하위 20개 종목(블루칩)의 평균 수익률은 -12%였다. 표준편차가 크다는 건, 주가 급등락이 심해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이수정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와 코스닥은 올해 개인 거래 비중이 각각 54%, 81%나 되어 그야말로 ‘개인 독주장’이었고 그래서 도파민 매매 성과가 뛰어났다”면서 “외국계 회사나 국내 기관에서 00주식은 비싸다고 수차례 말해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10배 이상 오른 주식들이 속출하면서 인터넷에 온갖 ‘인생역전’ 스토리가 넘쳐났고, 여기에 포모(FOMO·소외 두려움) 증후군이 맞물리면서 주식의 ‘로또복권’ 현상이 나타났다. 즉각적인 쾌감과 고자극을 추구하는 도파민 주식 매매가 극으로 치달은 곳은 신규상장주다<표 참고>. 금융당국이 지난 6월 말부터 신규 상장종목의 첫날 가격제한폭을 최대 400%까지 풀어주면서 물을 만났다. 단 하루 만에 수백퍼센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천하제일 단타대회’를 금융당국이 먼저 나서서 판을 깔아주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금융위기, 미국발 채권 금리 폭등이라는 두 개 변수가 서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 마땅히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상승장에 길들여져서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고, 과도하게 빚 내서 투자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株, 아직도 갖고 있니?”
도파민 매매가 득세하는 시기엔 배신이 일상이다. 작년 9월만 해도 삼성전자 소액주주 수는 602만명으로, 1969년 창립 이후 첫 600만 시대를 열며 ‘국민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기준 삼성전자 소액주주 수는 567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8개월 동안 35만명이 주식을 팔고 떠난 것이다.
NH투자증권이 올 1~7월 주식 거래를 한 개인 157만1513명의 매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트렌드는 뚜렷했다. 작년 1~7월 개인들의 순매수 종목 1위는 삼성전자였다. 주식 포트폴리오에 삼성전자 주식이 없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모두가 앞다퉈 삼성전자 주식을 사 모았다.
하지만 올해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종목 1위가 삼성전자이기 때문이다. 20대 청춘부터 10억대 큰손까지 모두가 삼성전자를 버리고 떠나는 중이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들이 팔아치운 삼성전자 주식은 약 10조58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에서 이사간 개인들이 새로 둥지를 튼 곳은 ‘포스코홀딩스’다. 올초부터 지난 17일까지 개인들의 포스코홀딩스 순매수 금액은 9조8090억원에 달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올해만 100% 넘게 올랐고, 지난 달 26일엔 장중 76만4000원까지 치솟아 개인들의 애정 공세에 화답했다. 올해 개인 순매수 2위 종목인 LG화학(1조2600억원)과의 금액 격차도 커서 그야말로 ‘포홀 몰빵’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소액주주 수도 크게 늘었다. 6월 말 기준 약 52만명으로, 반년 만에 20만명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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