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영국 남부 콘월주의 한 도로에 설치된 CCTV 시스템은 설치 72시간 만에 교통법 위반 사례 297건을 적발했다. 콘월 라이브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위반 유형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117건, ‘안전벨트 미(未)착용’ 180건이었다. 이 CCTV 시스템은 단순 녹음·녹화 기능만 있던 기존 CCTV와 달리,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보다 정확하게 사물을 식별하고, 이상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지능형 CCTV를 활용한다. CCTV가 선명한 화질로 차량 내부까지 촬영해 교통법 위반이 의심되는 행위를 포착 및 수집하고, 담당 인력이 이를 검토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이다. 이를 두고 영국 내에서는 “과도한 일상 감시 아니냐” “AI로 무장한 빅 브러더의 등장이냐”는 등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내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프랑스에서도 최근 공원 등 공공장소 곳곳에 AI CCTV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4월 테러·군중행동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AI CCTV를 시범 운영하는 법이 통과됐다. AI가 개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위험 여부를 판단한다는 소식에 프랑스 시민단체들은 “사람의 행동이 정상인지 AI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해외에서 AI CCTV 적용을 두고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최근 무차별 폭행 사건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AI CCTV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 CCTV는 범죄 용의자 추적, 과속 단속 등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일각에선 “모든 사람의 일상이 감시당하는 ‘빅브러더 사회’가 온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AI CCTV 놓고 정부-시민단체 갈등
프랑스에서는 AI CCTV를 운영하는 정부·AI 기업들과 인권단체 사이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AI CCTV는 개인 간 다툼은 물론, 가방을 던지는 것과 같은 수상한 행동을 감지한 뒤 이를 당국에 실시간으로 알린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는 AI CCTV로 테러와 같은 안전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의 디지털 권리 보호단체인 ‘라 콰드라튀르 뒤 넷’ 등은 “국가가 시민들의 신체와 행동을 감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건 기본권 침해” “집회 결사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도로에 AI CCTV를 도입한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AI CCTV 운영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운전자의 안전벨트 미착용, 휴대폰 사용, 쓰레기 투기 등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국 내에선 “운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통제하겠다는 것” “세금 징수 목적 아니냐”는 등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서도 기술 개발 및 도입 늘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갖춘 AI CCTV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SK텔레콤은 AI가 성별과 연령대를 구분하고, 모발과 소매의 길이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식별할 수 있는 CCTV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아 찾기, 범죄 용의자 추적 등 공익적 용도로 개발됐지만, 자칫 악용될 경우 개인의 동선 추적 등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한 보안업체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근무자의 방독면이나 안전모 착용 여부를 CCTV로 모니터링하는 현장 관리 시스템을 최근 개발했는데, 이 역시 악용되면 “과도한 근무 태도 감독” 등의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지난해 ‘핼러윈 참사’에 이어 최근 대낮에 ‘무차별 폭행 사건’등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지방 정부들이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는 최근 사람이 많이 모이는 홍대입구역에 사람 수를 계산해 밀집도 측정 후 위험을 알리는 AI CCTV를 도입했고, 서울 양천구는 연말까지 지역 내 범죄 취약 지역에 340대를 추가 설치하기로 했다. 정부도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상 속 1㎡당 사람 수를 계산하고, 군중의 움직임과 동선 등을 분석하는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아직 AI CCTV만 따로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에 설치된 공공 CCTV는 지난 2008년 전국 약 16만대에서 지난해 161만대(통계청 자료)로 10배가량 늘었다. 민간에서 운영되는 CCTV까지 합치면 국내 전체 CCTV는 최소 1500만대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