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기로 돈을 빌려 주식을 샀다가 이를 갚지 못해 주식을 강제로 처분당하는 반대매매가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이렇게 ‘빚투’(빚내서 투자) 경고음이 커지는 가운데 키움증권이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5000억원 가까운 미수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주가 조작까지 연루된 빚투가 반대매매를 부를 악순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미수 거래 반대매매 규모는 5257억원을 기록,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4월 이후 17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하루 평균 반대매매 규모(510억원)의 10배를 뛰어넘는다. 미수 거래란 종목별로 정해진 증거금률만큼만 내고, 나머지는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투자 방식이다. 예를 들어 특정 종목의 증거금률이 40%라면, 100만원어치 주식을 살 때 투자자는 40만원만 내고 나머지 60만원은 증권사로부터 빌려 살 수 있다. 미수 거래를 이용한 투자자는 2거래일 뒤 증권사에 돈을 갚아야 한다. 만약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는 투자자의 주식을 강제로 팔아 빚을 회수한다. 이를 반대매매라고 한다. 반대매매가 큰 폭으로 늘었다는 건 빚투에 나선 투자자가 돈을 갚지 못해 주식을 강제로 팔아치운 경우가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미수금(투자자가 미수 거래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한 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의 비율을 의미하는 반대매매 비율(69%) 역시 사상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상황이었던 2008년에도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율 최고치는 23%(2008년 10월 27일)에 불과했다.
◇미수 거래로 몰리는 빚투
반대매매 규모와 비율이 사상 최고치로 뛰어오른 것은 우선 주가가 투자자의 예상과 달리 하락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15일 2601.28이었던 코스피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이달 10일 2402.58까지 200포인트(7.6%) 가까이 내렸다. 이에 주가를 단기 저점이라고 생각한 일부 투자자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대거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코스피는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 계속되고 중동발 긴장이 고조되면서 20일 오히려 올해 1월 중순 이후 최저치인 2375로 내렸다.
일각에선 지난 4월 말 SG증권발 무더기 주가 하락 사태로 증권사들이 차액결제거래(CFD) 문턱을 높이면서 빚투에 나선 투자자들이 대거 미수 거래로 몰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CFD는 투자자가 증거금 40%로 최대 2.5배까지 주식에 투자한 뒤 나중에 시세 차익만 정산하는 장외 파생 상품이다. 자기 자금이 적어도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줘서 빚투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라덕연 일당’의 주가 조작을 촉발했다는 지적을 받자 CFD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자 이번엔 개인 투자자들이 미수 거래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키움증권 미수금 4900억 발생
이런 상황에서 최근 주가 조작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영풍제지의 하한가로 한 증권사에서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다. 지난 20일 장 마감 후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로 미수금 4943억원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영풍제지는 특별한 호재가 없었음에도 올 들어 7배 이상으로 주가가 뛰었다가 지난 19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20일 거래가 정지됐다. 이에 투자자들이 키움증권에서 미수거래를 위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5000억원에 가까운 미수금이 발생한 것이다.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거래가 재개되면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이 경우 반대매매가 쏟아지면서 주가가 하락해 다시 반대매매를 부르는 악순환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권가에선 키움증권의 부실한 내부 통제가 주가 조작의 빌미를 제공하고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말이 나온다. 주요 증권사들은 올 초부터 지난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률을 100%로 올리면서 미수 거래를 막았다. 그런데 키움은 40%로 유지하다가 19일에서야 100%로 올렸기 때문이다. 실제 영풍제지 주가 조작 혐의를 받는 세력은 100여 개에 달하는 계좌를 동원해 영풍제지 시세를 조종했는데, 이 계좌 중 상당수가 키움증권 계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임원은 “키움은 지난 4월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때 곤욕을 치렀음에도 내부 통제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