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ATM기 앞으로 배달노동자가 지나고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일 타운홀미팅에서 은행을 향해 ‘갑질’ ‘독과점’이란 단어를 쓰며 날 선 비판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마치 은행의 종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소상공인 호소를 소개한 이후 이틀 만이다. 고금리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는 와중에 은행원들이 손쉽게 번 돈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윤 대통령은 “은행은 너무 강한 기득권층이며,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다수 국민은 은행들이 차별화된 금융 상품 개발, 해외 시장 개척 등 경쟁력을 제고하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자기 잇속만 철저히 챙긴다고 보고 있다.

◇독과점 속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

은행들은 고금리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두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1일 발표한 국내 18개 시중은행들의 경영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해 이자이익은 36조2071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현대차 시가총액(약 36조원)과 맞먹는 금액이다.

은행들은 금리가 낮을 때나 높을 때나 관계없이 매년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하고 있다. 대출 이자는 높이고, 고객들이 맡긴 예·적금 이자는 낮게 유지해서 ‘손 안 대고 코 풀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은행업이 정부 인·허가 문턱 탓에 신규 사업자 진입이 철저히 제한된 과점 시장 체제로 유지되면서 편하게 ‘이자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진입 장벽이 높다 보니 인터넷은행 3곳(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을 제외하면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0여 년간 단 한 곳도 은행 인가를 받지 못했다. 국가적 특혜 속에 영업을 하고 있지만, 최근 5년간 은행권 평균 사회공헌금액은 1조원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은행들이 금리 하락기에는 대출 금리를 찔끔 내리면서 인상기에는 가파르게 올리는 탓에 서민들의 이자 상환 부담은 여전히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구당 월 평균 이자 비용은 12만4000원으로 지난해(8만7000원)보다 43% 급증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최근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치솟은 상황에서 대형 은행은 가계나 기업의 이자 비용을 큰 노력 없이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성과급·퇴직금 잔치에 국민 분노

국민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은 소홀히 하면서 쉽게 번 돈으로 임직원들에게 성과급과 퇴직금 잔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지난해 상여금(경영성과급, 성과보수 등) 총액은 2조2988억원으로 2년 전(1조9142억원)보다 20% 늘었다. 상여금 증가에 힘입어 5대 은행 직원들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1006만원을 기록했다. 5대 은행뿐 아니라 18개 시중은행의 평균 연봉(1억541만원)도 지난해 1억원을 넘어섰다. 2021년 기준 임금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3996만원)의 2.6배에 달하는 액수다.

성과급으로도 모자라 은행들은 퇴직금도 두둑히 챙겨주고 있다. 희망 퇴직을 지원받아 특별 퇴직금 명목으로 웃돈을 두둑하게 얹어주고 있다. 5대 은행은 지난해 2357명의 희망 퇴직자를 내보내며 1인당 3억5547만원의 특별 퇴직금을 손에 쥐여줬다. 올해 상반기 희망퇴직자들 중에는 퇴직금 총액이 11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쉽게 번 돈으로 ‘돈잔치’를 한다”는 비판에 은행들은 “선진국에 비해 국내 은행들의 이익률이 높지 않다”며 “씨티은행 같은 외국계 은행이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국내 소매 금융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외환 위기·금융 위기와 같이 어려울 때는 공적 자금에 손을 벌리고, 경영 여건이 좋을 때에는 뱃속 불리기에 급급한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행태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이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어려운 소상공인이나 서민 등을 지원하거나 원리금을 일부 탕감해주는 식으로 사회 공헌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