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지난 8월 코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회사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으로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두는 기술 특례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데뷔했지만, 상장 당시 ‘올해 매출 1200억원’을 자신했던 회사가 최근 6개월(4~9월)간 4억원도 안 되는 매출을 기록하면서 주가는 공모가 대비 40%가량 급락했다. 금융감독원도 상장 과정에서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지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의 불똥은 기술 특례 상장까지 옮겨 붙고 있다.

기술 특례 상장은 수익성은 낮지만, 성장성이 큰 기업들이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 심사 기준을 낮춰주는 제도다. 2005년 도입됐다. 매출, 이익, 시가총액 등 요건을 엄격히 따지는 일반 상장과 달리 자기자본 10억원 이상이거나 시가총액 90억원 이상이면 전문 기관의 기술 평가를 받아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 2017년까진 연간 기술 특례 상장 기업 수가 한 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미미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 벤처·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가 성장성을 평가해 추천하는 성장성 특례 요건이 추가되면서 기술 특례 상장이 대폭 늘었다. 2017년 5개에 불과했던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은 2018년 21개로 급증했고, 올 들어 현재까지 32개 기업이 기술 특례를 통해 상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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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특례 상장 68%, 공모가 밑도는 주가

기술 특례 상장이 대폭 늘면서 부실 상장 의혹도 늘고 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기술 특례를 통해 상장한 기업 중 스팩합병·상장폐지 종목을 제외한 149곳 중 102곳(68%)의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가를 밑도는 비율이 높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공모가를 너무 높게 잡았거나 기술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올해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가운데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10곳(스팩합병 제외) 중 8곳이 올해 누적 매출이 목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에스바이오메딕스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2억6000만원으로 공모 때 제시한 47억원의 5.5% 수준에 그쳤다. 자람테크놀로지(22.4%), 시큐레터(31.6%), 아이엠티(31.7%), 센서뷰(33.7%), 씨유박스(37.7%), 큐라티스(47.6%) 등도 누적 매출액이 목표의 절반 이하였다.

거래 정지나 상장 폐지 등까지 간 곳도 적지 않다. 2018년 상장한 철도·환경 사업 기업 유네코는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혐의로 구설에 오르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감사의견 거절로 올해 1월 상장 폐지됐다. 거래가 정지된 이노시스·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셀리버리 등도 상장 폐지 위기에 놓였다. 경영진이 악재 공시 전 주식을 매도한 혐의 등으로 거래 정지됐던 신라젠, 경영권 분쟁 등으로 소액주주의 반발을 산 헬릭스미스도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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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특례 상장 제도 보완할 필요

여러 부작용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술 특례 상장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운용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기술력이 탄탄하지만, 영업 실적이 부족한 기업에 기술 특례 상장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알테오젠, 레인보우로보틱스, 파크시스템스, 루닛 등을 기술 특례 상장 성공 사례로 꼽는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꿔 환자가 스스로 주사를 놓을 수 있게 하는 기술로 대형 제약사들과 잇달아 계약을 맺고 있고,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로봇 섹터 주도주로 자리매김했다. 원자현미경 개발 업체 파크시스템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 등도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다. 루닛 관계자는 “기술 특례 상장으로 제때 자금을 조달해 필요한 곳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뛰어난 기술로 장래가 밝은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술 특례 상장 제도는 꼭 필요하다”면서 “상장 주관사의 책임 범위를 늘리고, 금융 당국이 철저하게 감독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