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만두·맥주·우유·치즈 등 소비자가 즐겨 찾는 제품에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발생한 것으로 정부 실태 조사 결과 확인됐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이는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면서 용량을 줄여 가격을 올린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일종의 꼼수다.
1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관계부처와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이 나타난 실제 사례를 공개하고, ‘용량 축소 등에 대한 정보 제공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실태 조사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이 확인된 만큼 “변칙적인 가격 인상을 끊어내겠다”는 입장이다. 고시 개정 등을 통해 사업자가 용량 변경 정보를 공개하도록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슈링크플레이션 품목, 평균 27g(12%) 줄였다
이날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견과류·김·만두·맥주·소시지·사탕·우유·치즈·핫도그 등 9개 품목, 37개 상품에서 올해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소비자원 가격 정보 사이트인 ‘참가격’과 소비자원 신고 센터를 통해 접수된 건, 주요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해 추린 결과다.
올해 1월 HBAF는 ‘허니버터아몬드’, ‘와사비맛아몬드’ 등 16개 아몬드 상품 한 봉지 용량을 210g에서 190g으로 줄였다. 같은 달 CJ제일제당은 ‘백설 그릴 비엔나’ 한 봉지를 640g에서 560g으로 줄였다. 지난 7월 서울우유는 ‘체다치즈’ 20매를 400g에서 360g으로 줄였고, 지난 10월 연세유업은 ‘연세대학교 전용목장우유’ 1000mL를 900mL로 줄였다. 작은 팩은 200mL에서 180mL로 쪼그라들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만 줄어든 것이다.
소비자원이 집어낸 37개 상품은 평균 약 27g(또는 mL) 줄어 기존 용량 대비 약 12%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슈링크플레이션이 가장 심한 건 풀무원 핫도그 제품들이었다. ‘모짜렐라 핫도그’, ‘체다모짜 핫도그’ 등은 한 봉지에 400g(5개)이 들어 있었는데, 지난 3월 320g(4개)으로 20% 쪼그라들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일부 제조사는 용량 변경을 인정하고 있지만, 포장재·레시피 등이 변경된 ‘리뉴얼 상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용량·성분 변경 안 알리면 과태료 문다
HBAF나 연세유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용량 변경 사실을 알리고 있다. 담당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처럼 주요 생필품의 용량·규격·성분 등이 바뀌면 포장지나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도록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용량이나 성분 등 중요 사항을 바꿀 때 사업자가 이를 알리지 않으면 ‘사업자 부당행위’로 지정될 수 있도록 고시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 한 번 위반하면 과태료 500만원, 반복 위반 시 최대 1000만원을 과태료로 물게 된다. 이승규 공정위 소비자정책총괄과장은 “과태료 금액은 많지 않지만 ‘소비자를 속인 기업’이라는 낙인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단위가격 표시 대상 품목도 현행 84개에서 더 늘린다. 산업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온라인 매장에서도 단위가격을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감시 체계도 보강한다. 소비자원은 내년부터 가격조사전담팀을 신설하고, 참가격 모니터링 대상을 현재 128개 품목(336개 상품)에서 158개 품목(500여개 상품)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유통업체와 자율협약을 맺어 1만여 개 상품에 대한 용량 정보를 받아 용량 변경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