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달 28일 태영건설의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 계좌에 목돈 2400억원이 입금됐다. 알짜 자회사라는 물류 기업 태영인더스트리를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팔고 받은 대금이다. 채권단과 금융 당국은 이 중 태영그룹 사주 윤석민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60%)만큼을 제외한 돈이 한 푼이라도 급한 태영건설에 바로 투입되리라 봤다. 하지만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이 만기인 1451억원 규모의 상거래 채권 중 외상매출 담보 채권대출(외담대)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을 통한 빚 탕감을 바라는 태영 측과 채권단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당국과 채권단은 티와이홀딩스 측이 워크아웃 신청 전후로 빚 갚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부실화한 태영건설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부실이 커져 밑 빠진 독이 돼버린 건설사를 버리고 상대적으로 우량 계열사인 SBS를 살리는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다.
◇‘밑 빠진 독’ 건설은 버리려고 하나
태영건설이 최근 만기가 돌아온 상거래 채권 중 30%가 넘는 외담대를 상환하지 않으면서, 일부 채권 은행에서 협력업체에 “대신 갚으라”며 상환 청구권 행사를 통보했다. 외담대는 협력업체들이 태영건설에서 받을 돈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인데, 태영건설이 갚지 못할 경우 약속대로 협력업체가 대신 갚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당국은 금융권에 “협력업체에 대한 상환 청구권 행사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채권 중 협력사가 이미 은행에서 할인받아 현금화한 451억원은 금융 채권이기 때문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시점부터 모든 상환이 유예됐다”고 했다. 돈을 갚을 대상이 협력사에서 은행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워크아웃 신청으로 갚을 필요가 없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융 당국 생각은 다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외담대가 워크아웃 진행 시 상환 유예될 수는 있으나, “태영이 파산을 신청한 게 아니라 기업을 살리겠다고 구조 개선 작업을 신청한 마당에 이를 (돈이 있어도) 갚지 않겠다고 나서는 건 정상화 의지를 의심케 한다”고 꼬집었다.
티와이홀딩스는 당초 태영건설에 1133억원을 빌려주기로 지난달 28일 공시했지만, 현재 이 중 400억원만 건설에 투입한 상태다. 지난달 CEO(최고경영자)로 경영에 복귀한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 회장은 2일 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채권단은 물론 현장 협력업체와 그 가족, 수분양자와 입주 예정자 등 모든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창업자인 저부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조기에 졸업하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태영 측의 태영건설 자구책에 현실성이 부족하고, 실질적 유동성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태영 측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지주사 역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별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홀딩스가 연대 보증한 곳에서도 차입금 만기 연장을 거부당하면서 조만간 목돈이 들어갈 것이란 얘기다.
◇당국·채권단 “진정성 있는 자구노력 안 보여”
새해 증시 개장 첫날인 2일 티와이홀딩스우와 태영건설우 두 종목이 나란히 개장 1시간도 못 돼 상한가로 직행했다. 2022년 말 둔촌주공 사태와 마찬가지로, PF 연쇄 부실을 막으려는 당국이 ‘첫 번째 도미노’인 태영을 넘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팽배하다는 것이다.
태영건설은 3일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에서 금융 채권단에 경영 상황과 자구안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여기서 대주주의 사재 출연 계획 등도 밝힐지 주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신용 평가사 관계자는 “사실상 티와이홀딩스로선 SBS를 계속 가져가느냐, 태영건설을 살리느냐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인데 SBS를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결국 태영건설을 손에서 놓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에선 태영그룹의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면 워크아웃이 결국 세금으로 태영건설을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돼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