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예산의 75%를 상반기(1~6월)에 쏟아부어 내수 회복과 민생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 고금리·고물가 때문에 작년 말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수출 회복의 온기(溫氣)가 서민과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체감 경기로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침체에 빠진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비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도 대거 해제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4일 ‘활력 있는 민생 경제’를 주제로 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물가와 고용률이 더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러한 결과를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게 민생을 알뜰히 챙겨야 한다”며 “(수출 등) 거시 지표는 좋은데 (국민이) 아직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현장에서의 세심한 정책 집행 배려가 조금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정부는 올해 물가 안정과 소상공인 부담 완화, 내수 활성화에 총력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우선 정부는 들썩이는 물가부터 확실히 잡기로 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6.3%)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7월 2.3%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올라 8월부터 5개월 연속 3%대에 머물러 있다. 기재부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과 에너지 바우처(이용권) 공급 등 물가 관리·대응 예산으로 작년보다 1조8000억원 늘어난 10조8000억원을 쓸 계획”이라며 “상반기 중 물가 상승률 2%대 달성을 위해 범부처가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올 상반기 내수가 수출에 비해 부진할 것으로 보여 체감 경기가 상반기에 좋지 않을 것 같다”며 “금리도 하반기는 돼야 내려갈 것이고, 물가도 상반기에는 3% 위아래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이는 등 경제지표 흐름을 보면 상반기가 어렵다”고 했다.

올해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는 최근 뚜렷한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에서 알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가 2.2%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7월 발표한 전망치(2.4%)보다 0.2%포인트 내린 것이다. 올해 물가 상승률은 2.6%, 경상수지는 500억달러(약 65조원)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최근 물가를 높인 주요인이 과일 값 인상에 있다고 보고, 바나나·파인애플 등 21종 수입산 과일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거나 대폭 인하해 올 상반기 중 30만톤을 들여올 계획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 상승률 3.2% 중 과일 값 인상 요인이 0.4%포인트를 차지한다.

이 밖에 전기·가스료 등의 공공요금을 상반기에 묶어두고, 중소 알뜰폰 전파 사용료 일부를 감면하는 조치를 올해 말에서 2026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꼼수 인상을 뜻하는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감시도 강화한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함께 자영업자·소상공인 부담을 줄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소상공인 응원 3대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먼저 126만 영세 소상공인에게 20만원씩 총 2520억원 규모의 전기료를 지원한다. 둘째로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연 5~7% 금리로 돈을 빌린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이자 일부를 돌려주고, 연 7% 이상 대출을 연 5.5% 이하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셋째, 세금을 적게 내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현행 연 매출 8000만원 미만)을 높여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국세청은 건설·제조업, 음식·숙박업 종사자 중 120만명의 부가가치세 및 법인세 납부 기한을 각각 2개월, 3개월 늦춰주기로 했다.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도 세금을 내기 어려운 소상공인 등은 최장 9개월까지 납세 기한이 늘어난다.

또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 한해 전통시장에 쓴 돈의 소득공제율을 2배 높이고(40→80%), 작년보다 5% 이상 늘어난 상반기 카드 결제액에 대해 20% 추가 소득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노후 차량을 바꾸면 한시적으로 개별소비세를 70% 인하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의 전세 자금 대출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전기차는 업계의 가격 인하에 비례해 구매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9~12월 한시적으로 최대 10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 것을 감안해 지급 규모를 확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