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계속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는 예기치 못한 고금리를 맞아 치명적 후폭풍을 낳고 있다. 대출받은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어 소비 침체가 시작되고 경제 전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5일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소매 판매액 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매 판매액 지수’란 2020년 소매 판매액을 기준(100)으로 두고 소비가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지수가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은 외환 위기였던 1998년(-17.1%)과 카드채 사태로 소비가 얼어붙은 2003년(-3.1%)뿐이었다. 지난해에는 20년 만에 다시 소비 침체가 나타난 것이다.
영업 형태별로 보면 백화점은 작년 11월 기준 소매 판매액 지수가 144로 호황이었지만, 음식점 같은 소매점(81.5)이나 일반 수퍼마켓 같은 잡화점(81.3)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소매 업종을 중심으로 지수가 2020년 대비 크게 가라앉은 모습을 보였다. 19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3%를 웃도는 고물가까지 닥치면서 가계 소비 여력이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22년 기준 가구의 비소비 지출 중 이자 비용은 전년 대비 18.3% 오른 247만원으로 집계돼,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대.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과 마이크로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2분기(4~6월) 전세 가구의 이자 비용은 월평균 21만4319원으로 2년 전인 2021년 2분기보다 110% 폭증했다.
소비는 올해 한국 경제가 성장률 1%대로 주저앉느냐 2%대 턱걸이를 하느냐를 결정할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을 결정하는 다른 요소인 수출이나 투자는 올해 그간의 부진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소비는 코로나 때보다도 저조한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 소비가 상반기에 1.5%(이하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하는 데 그치고 하반기엔 2.2% 증가로 소폭 개선돼 연간 1.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