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돈이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작년 상승세를 탔던 미국 증시는 올해 여전히 웃는 데 반해, 작년 하락세였던 중국 증시는 올 들어 더 떨어지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500개 대형주를 모아놓은 S&P500 지수가 19일(현지 시각) 1.2% 상승한 4839.81에 거래를 마쳐,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쓴 것은 2022년 1월 이후 2년 만이다. 이날 나스닥 지수와 다우 지수도 각각 1.7%, 1.05% 오르는 등 뉴욕 3대 지수가 일제히 올랐다. 새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가 늦어져 유동성(돈)이 예상보다 늦게 풀릴 수 있다는 신중론이 퍼지는데도 미국 기업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반면 중국 증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암울한 분위기의 연속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연초 이후 19일까지 4.8% 미끄러졌고,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50개 종목을 추린 홍콩 H지수는 11% 넘게 폭락했다. 홍콩H지수는 세계 주요 지수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 등 경기 부진 우려가 계속되고 있지만, 당국의 대대적인 부양책도 나오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홍콩 H지수가 떨어질수록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는 국내 ELS(주가연계증권) 투자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의 돈, 중국선 빠지고 미국으론 몰린다
뉴욕 증시를 밀어올리는 것은 AI(인공지능) 특수를 누리는 기술주들이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올 들어 20.1% 급등했고, 각종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메타(8.3%), 마이크로소프트(6.0%), 알파벳(5.0%) 등도 상승세를 타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거나 이에 근접했다. 금융 정보 업체 팩트세트는 애플·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 등 대형 기술주 7종목인 일명 ‘매그니피센트(M7)’ 주가가 올해 평균 11%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했다.
연준이 올봄 금리 인하를 시작하지 않아도, 연내 금리를 낮출 건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 증시는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S&P500 전망을 작년 말보다 7% 높은 5100포인트로 제시했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투자전략가는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시대가 끝나고, 낮은 금리가 빠르게(lower and sooner) 도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G2(미국, 중국)의 다른 한쪽인 중국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작년 5.2%였던 성장세가 올해는 4.4~4.7% 수준으로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인구가 2년 연속 줄어들면서 성장 동력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작년 부동산 개발 투자가 9.6%나 줄어드는 등 부동산 경기 회복도 어려워 보인다. 작년 12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 홍콩, 마카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중화권을 향한 서방의 투자 심리는 싸늘하게 식었다.
◇울고 싶은 국내 ELS 투자자들
중국 경제에 걱정거리만 쌓이면서 주가는 하락세다. 작년 한 해 3.7% 뒷걸음질한 상하이종합지수는 올해 내림세가 더 커졌고, 작년 14% 내린 홍콩H지수는 연초 이후에도 두 자리대 감소세다.
이에 홍콩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삼은 ELS(주가연계증권) 만기 손실률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상품에선 17일 기준 56.1% 손실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ELS에서 올 들어 19일까지 2296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인데, 이 중 약 80%(15조4000억원)가 올해 만기를 맞는다.
지금 추세대로 손실률이 60% 수준까지 오를 경우,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관련 ELS의 원금 손실 규모는 상반기에만 6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당분간 중국 주가지수의 바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