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을 누르기 전에는 긴장되고, 떨려요. 매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벨을 누릅니다.”
통계청 김민정(51) 조사원은 경력이 1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다. 하지만 통계 조사를 위해 가정 방문에 나설 때마다 큰 부담을 느낀다. 1인 가구가 늘고,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통계 조사에 응해주는 집이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김 조사원은 “택배와 배달도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여서 조사 대상자와 대면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높은 ‘통계 조사’의 벽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현장에서 가정집을 방문해 설문을 하는 통계 조사원은 모두 2000여명이다. 이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소득·분배·인구 등 각종 통계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경제 상황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자료다. 정부는 통계 자료를 활용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의성있는 대책을 내놓는다. 중장기 정책을 설계할 때도 통계는 유용하게 쓰인다. 김 조사원은 “현장 일이 힘들지만 통계 결과가 발표되고, 다양한 분석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사회에 울림이나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 뿌듯해 계속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통계 조사는 발품만 판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조사 대상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까지 무수히 많은 거절을 당한다. 대면에 성공해도 문제 없이 조사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조사 도중 갑자기 답변을 거부하거나 답변 대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등 돌발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현숙(56) 조사원도 통계 조사를 한지 23년이 넘었지만 현장 조사는 늘 난관의 연속이다. 최 조사원은 “하루 20~30가구를 방문해도 실제 만날 수 있는 건 10가구를 넘기기 어렵다”며 “아파트나 원룸 1층 공동 출입문에서부터 조사를 거절당할 때가 많다. 현관문 앞에서는 문 너머 대화라도 할 수 있지만, 공동 출입문은 호출해도 무시하면 끝”이라고 말했다.
관리실도 “민원이 들어온다”며 협조에 난색을 표한다. 일부 아파트 단지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통계조사 불가’ 지침을 내리기도 한다. 최 조사원은 “공동 출입문을 넘지 못하면 1시간 넘게 문 앞을 서성이다가, 조사 대상자일 가능성이 있는 주민이 나오는 것 같으면 어렵게 말을 붙여서 응답을 받아낸다”며 “재활용 분리수거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우연히 대상자를 만나 답변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 번 방문이나 야간 조사에 반감 높아
김 조사원과 최 조사원에 따르면 저녁 이후 방문할 경우, 조사 대상자들의 경계심은 더욱 높아진다. 최근에는 1인 가구나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며, 저녁 늦게 방문해야 조사 대상자를 겨우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퇴근이 늦는 이들도 있어, 조사 기한을 맞추려 주말에 시간을 내 방문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최 조사원은 “왕복 2시간 거리인 지역까지 야간 방문 조사를 다녀와야 해서 퇴근하고 보면 하루가 다 지난 날도 있다”고 했다.
김 조사원은 “조사 요청을 하면 ‘공무원이 왜 밤에 일 하냐’며 안 믿는 분도 있다”며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은 우리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늦은 시간이라도 조사 대상자를 만나는 게 우리 조사원들의 업무임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최 조사원은 “조사 대상자 분들 중에는 여러 차례 방문을 하면 조사를 거부한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음에도 무시당했다고 느껴 화내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조사원들은 조사 대상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하우를 동원한다. 신생아 가구에 벨을 누르지 말아 달라는 에티켓 스티커를 만들어 선물하거나, 조사 대상 가구에서 지급 받을 수 있을 만한 바우처 신청 용지를 준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마음이 담긴 손편지를 전할 때도 있다. 김 조사원은 “남편을 잃고 독거노인이 된 조사 대상자를 친정엄마처럼 모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국선 낮은 응답률에 통계 ‘펑크’도
통계청에서는 모바일이나 온라인 등을 통한 비대면 조사를 넓혀 나가고는 있지만, 방문 조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비대면으로 조사를 요청하면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응답률이 낮은데다, 조사 대상자들이 조사 항목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비대면 조사를 하면 자취하는 자녀까지 ‘한 가족’으로 포함시켜 조사에 응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자취하는 자녀는 따로 ‘1인 가구’로 잡히기 때문에, 조사 대상 가구원에서 제외해야 한다. 최 조사원은 “한 번은 조사 대상이었던 노부부의 지출이 유달리 적길래 방문해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응대하더라”며 “쌍꺼풀 수술을 받으시고는 지출 항목으로 기입하지 않으셨던 것인데,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조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방문 조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통계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0월 통계 조사 응답률이 15%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실업률 관련 세부 통계 공표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0년 5월 UN 경제사회국이 전세계 국가통계청 218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7곳(69%)이 대면 면접조사를 “전면 중단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통계청은 영국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응답자에게 제공하는 조사 답례품 수준을 높이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작년엔 지역별 고용조사의 답례품을 5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리고, 답례품을 주지 않던 농림어업조사에도 1만원씩 지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조사원들이 방문 조사를 벌이다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자동 녹음기를 배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조사 답변율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