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 복지 등이 좋은 대기업 일자리가 적다 보니 과도한 입시 경쟁이 일어나고, 저출산과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왔다.

◇대기업 일자리 비율, OECD 최하위

27일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이 발표한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13.9%다. OECD 32국 중 최하위로 전체 평균(3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 일자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57.6%)이었다. 이어 프랑스(47.2%), 영국(46.4%) 등의 순이었다.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중소기업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독일도 대기업 일자리 비율이 41.1%나 됐다. 일본(40.9%)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도 우리나라의 3배에 가까웠다. 이 보고서에서 대기업은 OECD 기준인 250인 이상을 따랐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기준은 300인 이상이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이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KDI FOCUS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브리핑에서 영상을 통해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보통 대기업 일자리는 중소·중견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체보다 급여, 복지 등의 근로 조건이 훨씬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용노동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직원 수 5~9명인 소규모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2022년 기준)했다. 직원 수 100~299명인 사업체도 대기업의 71%에 그쳤다. 대기업은 육아휴직 사용 가능성 등 다른 근로 여건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임금 근로자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답한 비율이 대기업은 95.1%나 됐다. 반면 직원 수 100~299명, 30~99명인 사업체는 각각 88.4%, 71.9%에 그쳤다.

그래픽=양진경

◇부족한 대기업 일자리로 저출산 심화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을 쓰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 소규모 사업체에 다니는 근로자가 워낙 많다 보니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 고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고 연구위원은 “(저출산 관련) 제도나 정책이 있어도 현장에서 집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 아이를 키우는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 연구위원은 “수도권 집중화도 결국 비수도권에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밝혔다.

대기업 일자리가 적을수록 대기업에 들어가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입시 경쟁도 과열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는 저출산을 부추긴다. 실제로 고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상위권 대학에 들어간 사람일수록 향후 직장에서 훨씬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2000년 수능 시험 성적을 활용해 4년제 대학의 서열(순위)을 정한 뒤, 상위 20%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받은 급여를 분석한 결과 하위 20% 대학을 졸업한 이들보다 20~40대에 1.2~1.5배가량 돈을 더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 격차는 40~44세(1.51배)일 때가 가장 컸다. 고 연구위원은 “사업체 규모가 커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다수의 중소기업 지원책이 기업의 규모화(스케일업)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도한 대기업 규제 탓에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곳이 많은 것은 아닌지 등을 검토해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고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되면 무조건 급여와 복지 등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더 좋은 자본, 기술, 노동이 결합돼 생산성이 올라갈 확률이 커지고, 이는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고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되면 무형의 브랜드가 형성되고, 분업 및 전문화 등을 통한 효율성 향상, 사업 다각화와 위험 분산 등의 이점이 크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