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 재정 수지가 올 1분기(1~3월) 75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전망하는 관리 재정 수지 적자인 91조6000억원의 82%에 달하는 규모를 한 분기 만에 도달한 것이다. 관리 재정 수지는 정부의 총수입과 총지출의 차이인 통합 재정 수지에서 매년 흑자를 기록하는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뺀 것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다. 1분기 적자 폭은 월별 재정 수지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래 분기 기준 적자 폭으로도 가장 컸다.
정부는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올해 예산 범위 안에서 나랏돈을 연초에 당겨 집행한 결과일 뿐, 재정 관리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금이 덜 걷히고 있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나랏빚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분기 재정 적자, 역대 최대
9일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 동향 5월호’에 따르면, 올 1분기 정부의 총수입은 작년보다 2조1000억원 늘어난 147조5000억원인데, 총지출은 작년보다 25조4000억원이나 늘어난 212조2000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 재정 수지는 64조7000억원 적자였다. 여기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걷어낸 관리 재정 수지는 75조3000억원 적자였다. 작년 1분기 적자 폭인 54조원보다 21조3000억원이나 적자 규모가 커진 것이다. 분기 기준으로는 적자 폭이 역대 최대치다. 앞서 정부는 올해 관리 재정 수지 적자를 91조6000억원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한 분기 만에 82.2%까지 차오르게 됐다.
중앙정부 채무는 지난 3월 말 기준 111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고채 만기 상환이 분기 말에 집중되면서 전월보다는 4조9000억원 감소했다. 하지만 작년 말의 1092조5000억원보다는 23조원 늘었다.
◇“연초에 나랏돈 빨리 푼 결과”
정부는 1분기 재정 적자가 크게 늘어난 원인이 경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나랏돈을 연초에 빨리 푼 결과라고 설명한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정부가 쓴 돈은 212조2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656조6000억원)의 32.3%에 달한다. 이는 작년 1분기 본예산 진도율(29.2%)보다 3.1%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한주희 기재부 재정건전성과장은 “올해 연간 신속집행 규모인 252조9000억원의 41.9%인 106조1000억원을 1분기에 썼다”며 “1분기에 신속 집행 예산을 작년 1분기보다 23조2000억원 더 쓰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집행률을 보이면서 재정 적자 폭도 덩달아 커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예산의 65%를 상반기 중에 집행하는 신속 집행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1분기에 일시적으로 재정 적자 폭이 커졌고, 올해 남은 기간엔 나랏돈 쓰는 속도가 1분기보다 느려지면서 연간 재정 수지가 전망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의 변수를 제외하면 연간 재정 수지는 예산에 맞춰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올해도 작년에 이어 세수 감소가 이어지고 있어서 나랏돈을 무리하게 풀다가 재정 수지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작년 역대 최대인 56조원의 ‘세수 펑크’가 난 가운데, 올 1분기에도 법인세 수입 등이 부진하면서 국세 수입은 84조9000억원으로 작년보다 2조2000억원 줄었다. 올해 정부가 예산을 계획대로 쓰고 있다고 해도 예상했던 것보다 세금이 너무 적게 걷히면 적자 규모가 불어날 수밖에 없다. 야당이 국민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는 민생 회복 지원금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올해도 작년처럼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정부의 낙관적 국세 수입 예상치보다는 세수가 적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입 감소로 관리 재정 수지 적자도 정부 예상치인 91조6000억원보다 6조~7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