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길고 더워지면서 전국 과일재배 지도가 북상하는 추세다. 청송, 영주 등 경북에서 주로 재배됐던 사과 주산지도 강원도로 확대되고 있다. 사과는 아한대 기후에 적합한 과일로, 서늘한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는 사과 재배지로 새로 주목받는 지역이다. 한 입 베어 물면 고랭지의 찬 기운을 인고하며 야무지게 덩치를 키운 과육이 기분 좋게 씹힌다. 양구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혜인농장의 안덕근 농부(65)와 강원농장의 심정석 농부(71)를 만나 양구 사과 재배기를 들었다.
안덕근 농부는 12년 전 사과 재배에 입문해 현재 해발 700m에서 5000여 그루의 사과나무를 키우고 있다. 홍로, 부사, 황금 사과 등 6종의 사과를 취급한다. 심정석 농부는 사과 농사 경력 28년의 베테랑이다. 현재 해발 600m 이상 고지에 있는 4만5000평(14만8760㎡) 규모의 과수원에서 아오리, 홍로, 부사 등을 키운다.
두 농부는 양구 사과가 타 지역 사과보다 당도가 높고 육질이 단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교차가 커야 사과의 당도가 올라가는데요. 양구는 아침과 밤의 기온이 10~15도 이상 납니다. 또 사과의 씨앗이 양분을 끌어당기는 힘이 15~23도 환경에서 극대화됩니다. 25도를 넘으면 양분을 당기는 힘이 떨어지죠. 생육기인 여름철 열대야가 계속되면 사과 품질이 떨어지는데, 양구는 전국이 열대야로 들썩일 때도 밤 기온이 23도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늦가을 사과 부사가 한창인 요즘 수확에 정신이 없다. 봄 여름 무진 애를 쓴 덕분이다. “5월 중순에 사과나무에 꽃이 피면 그때 수정을 합니다. 부사는 약 180일을 키워야 하죠. 덩치만 커졌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수확기에 햇빛을 막는 이파리를 자르고, 사과가 볕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과실을 돌리는 데 오랜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가을 사과는 대자연의 선물이기도 하다. “농부는 하늘과 동업하는 사람이에요. 환경이 따라주면 잘 되고, 그렇지 않은 해엔 가슴앓이 하며 내년을 기약해야 하죠. 어느 한 요소 때문에 농사가 대박이 나는 일은 없습니다. 기본을 지키되, 여러 변수가 맞물리면서 커 가는 거죠.”
두 농부가 애지중지 키운 사과는 대화농협으로 출고된다. 대화농협은 야채를 전문으로 유통하다가, 강원도가 새로운 사과 산지로 주목받으면서 작년 11월부터 강원도 부사로 사과 유통을 시작했다. 강원도 양구와 평창 등 고랭지에서 키운 사과를 취급한다.
입고된 사과는 당도, 육안, 크기 선별을 거쳐 포장 후 하나로마트 등에 유통한다. 부사는 저장성이 좋아서 특수 처리하면 이듬해 5~6월까지 먹을 수 있다. 저장된 부사를 소진하면 여름 사과가 출하되고 이후 홍로, 노란 사과가 차례로 나오니 이제 우리나라는 1년 내내 사과를 먹을 수 있다.
양구 사과의 가장 큰 매력은 맛이라고 했다. “양구 사과가 예쁘진 않아요. 하지만 일단 먹으면 알아요.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해 아주 맛이 좋습니다. 자연이 채워준 양분은 거짓말하지 않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사람과 똑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