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가 ‘전기 먹는 하마’라는 게 드러나면서 AI 시대를 앞서려는 국가, 기업들이 전력 구하기에 분주하다. 국제에너지지구(IEA)는 ‘2024 전기’ 보고서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로 한 번 검색하는 데 평균 2.9와트시(Wh)의 전력이 쓰인다고 했다. 검색 사이트 구글에서 한 번 검색할 때 평균 0.3와트시가 들어가는 것보다 전력 소모량이 10배나 많다. AI용 반도체 공장 한 곳 돌리는 데 원전 1~2기 정도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티끌 하나 없는 클린룸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만난 에너지 경제학자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첨단산업에 맞는 전력 인프라가 있느냐가 AI, 반도체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느냐의 핵심 어젠다가 됐다”며 “전력이 첨단산업화 되지 못하면 주요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친환경 발전소 등을 짓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며 “발전소와 첨단 공장을 잇는 송배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미래의 ‘전기 먹는 하마’들
- 첨단산업에 전력이 왜 중요한가.
“과거엔 선진국이 될수록 전기를 적게 사용한다고 봤다.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다. 첫째, 탄소 중립 때문이다. 탄소 중립은 열, 수송까지 모든 에너지를 청정전기화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석유를 태워 차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태양광 등으로 전기를 만든 후 배터리에 충전해 전기차를 몬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전기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둘째, AI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됐다. 그런데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고 할 정도로 전기를 많이 쓴다. 미국 등 선진국은 AI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한 안정적 전력 공급이 화두다. 탄소 중립과 AI, 이 둘 때문에 첨단산업이 많은 선진국일수록 전기를 많이 쓰게 된다.”
-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 전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첨단 반도체 공장 10개를 짓는다고 한다. 정부는 10기가와트(GW)면 전력 공급이 된다고 본다. 공장 1곳당 원전 1기쯤 발전 용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전 1기의 발전 용량은 1.3기가와트 정도다. 또 현재 우리나라 전체 발전 용량이 110기가와트인데, 이의 10%쯤을 용인 클러스터 혼자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보다 더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AI용 첨단 반도체 공장에는 현재 공장 1곳당 4개인 클린룸을 2배 더 크게 지어야 하고, 그만큼 전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 AI 데이터센터도 전력 소모가 많다던데.
“AI는 빠르게 연산하면서 전기를 쓴다. 연산할 때 열이 나는데, 열을 식힐 때도 전기가 들어간다. 우리나라 데이터센터 수요를 봤더니 추가로 48기가와트의 전력 설비가 필요하다. 현재 발전 용량의 절반쯤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전력 미스매치 문제
- 전력이 필요하면 발전소를 세우면 되지 않나.
“우리나라의 발전 설비 투자는 1990년 이후 5.3배 늘었다. 하지만 송전망 투자는 1.5배 느는 데 그쳤다. 정치적으로 탈원전, 친원전을 오갔다. 그 사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막대하게 세웠지만 전력 생산지와 수요지가 어긋나는 전력 미스매치만 남겼다. 발전 설비를 늘리는 게 전력 투자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 전력 미스매치, 어느 정도인가.
“재생에너지는 지리적 편차가 크다. 태양광, 풍력은 태양이 많이 비추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그러면 덥고 바람이 세서 살기 어려운 곳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런 곳에서 사람이 많이 사는 산업단지까지 전기를 끌고 오는 송전망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태양광, 풍력 발전 등은 남해안에 있고, 원전은 동해안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은 전력이 남고, 수도권은 부족하다.”
- 전기 남는 곳에 싼 가격으로 공장을 유치하면 안 되나.
“전기 요금이 싼 지역에 공장을 세워도, 교육, 의료, 문화 등 인프라가 없을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국 단일 요금 체계여서 지역별 가격 차별화가 어렵다. 수도권 사용자가 송배전망 원가 부담을 더 지고 요금을 더 내야 하는 걸 쉽게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송전 인프라 투자가 중요한데,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에 어떻게 보상할지 문제다. 그런데 송전을 독점한 한전은 빚만 200조원에 하루 이자만 120억원을 넘고 있어 보상 여력이 없어 보인다.”
◇ 재생에너지와 전력 공급 변화
-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릴 순 없나.
“태양광, 풍력 등은 간헐성, 변동성이 특징이다. 24시간, 365일 전기가 절대로 끊어지면 안 되는 첨단산업에 안정적 공급이 어렵다. 발전이 부족할 때를 대비한 백업 장비가 있어야 하고, 넘쳐나면 충전할 시설이 필요하다.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모든 에너지를 청정 전기화하면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청정 전기화를 추진한 유럽은 친환경 비용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다.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무조건 따라 할 것은 아니다.”
-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 태양광 이용률은 15%인데, 미국 캘리포니아는 23%에 달한다. 우리는 여름철 장마 등으로 일조량이 균일하지도 않다. 풍력도 덴마크는 풍속이 초당 10m로 일정한데, 우리는 초당 6~7m에 그친다. 이 정도 차이는 발전량에선 3~5배 격차를 낳는다. 불리한 지리 여건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 당장 필요한 대응법을 찾는다면.
“첨단 공장 가까이에 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향후 수소 발전소로 개조하는 걸 전제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세워 가교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SMR, 즉 소형 모듈 전자로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아직은 기술 개발 중이어서 시간이 필요하다. 천연가스든 원전이든 경제적으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장기적으로는 청정 에너지 발전 기술을 충분히 확보하고 송전망도 확충해야 한다. 다만, 결국은 국민들에게 발전과 송전 비용이 크게 늘고 전기 요금이 오른다는 걸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
“전기는 초 단위로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하는 서비스”
전기는 공공재인가
조홍종 교수는 “전기는 한전 같은 공기업이 공급해서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공재는 아니다”라며 “적정 가격을 내고 전기를 쓰는 가격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맞춰질 것”이라고 했다.
―전기는 공공재인가.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는 비배제성·비경합성이란 성격이 있어야 한다. 비배제성은 내가 돈을 안 내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경합성은 내가 써도 남이 쓰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는 내가 돈을 낸 만큼 쓰는 서비스다. 내가 쓰면 남이 못 쓴다. 내가 1킬로와트시(kWh)를 쓰면, 발전을 더 하거나 송전을 해야 남이 쓸 수 있다. 한전이라는 공기업이 공급해서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공공재 성격은 거의 없다.”
―전기는 일반 서비스와 뭐가 다른가.
”초 단위로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하는 서비스다. 우리나라는 주파수 60헤르츠(㎐), 즉 1초에 60번 진동하는 균일한 품질의 전기가 24시간, 365일 공급되고 있다. 그런데 초과 공급이 돼서 진동수가 61헤르츠 이상으로 오르면 어느 순간 정전이 된다. 거꾸로 수요가 많아 59헤르츠 밑으로 떨어지면 정전 가능성이 높아진다. 초과 공급도, 초과 수요도 정전을 부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기는 꼭 공기업이 공급해야 하나.
”전기는 발전·송전·소비라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전은 한전 자회사가 나눠 한다. 그런데 송전과 판매는 한전이 독점한다. 특히 판매를 독점하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밖에 없다. 전기 송배전과 판매를 한전이 독점하고, 정부가 판매 가격을 통제해서 전기가 공공재처럼 여겨지게 했다. 그러다 보니 수요와 공급에 맞춰 가격이 조정되는 가격 원리가 전기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조홍종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2011년 단국대 경제학과에 부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거시경제, 에너지 자원, R&D(연구개발) 지식산업의 경제적 분석이다. 한국자원경제학회 수석부회장,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전력거래소 규칙개정위원회 위원, 환경부 배출권거래제선진화협의체 위원 등도 맡고 있다.
☞공공재
경제학에서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진 상품·서비스를 가리킨다. 비경합성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단 뜻이고, 비배제성은 비용을 내지 않은 사람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전용량과 전력량
발전소가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인 발전 용량은 와트(W)로 따지고, 발전소가 만들거나 소비자가 쓴 시간당 전력량은 와트시(Wh)로 측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