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한 것은 경기가 가라앉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1~3월) 1.3%의 ‘깜짝’ 성장을 했지만,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3분기(0.1%)에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간 한은은 가계부채 급증 등을 이유로 금리 인하를 늦춰 왔는데,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서야 금리를 내리는 꼴이 됐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잘못된 경기 판단으로 금리를 내렸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금리 인하 속도 높이는 한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8일 “금통위원 절반이 3개월 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경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금리 인하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셈이다.
이미 주요 글로벌 기관들이 한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을 줄줄이 하향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IB) 8곳 중 바클레이스·시티·JP모건·HSBC·노무라 등 5곳이 내년 한국 성장률을 1%대로 하향 조정했다. IMF도 내년 성장률 전망을 기존 2.2%에서 2.0%로 낮췄다.
외부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관세 부담 우려 등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이 총재는 이날 “‘레드 스위프’(미국 공화당의 백악관과 상·하원 의회 장악)는 예상을 빗나간 면이 있다”며 “수출 불확실성과 성장 전망 조정은 새로운 정보이고, 매우 큰 변화”라고 했다.
1400원대를 넘나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나 좀처럼 줄지 않는 가계부채를 보면 금리를 섣불리 내리기 어렵지만, 경기를 생각하면 금리를 동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3분기 수출 증가세가 물량 기준으로 예상보다 크게 낮아졌고 원인을 검토해 보니 구조적 요인이 컸다”며 “수출로부터 내수에 전파되는 온기가 낮아질 것을 대비해 금리를 낮추는 영향을 고려했다”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성장에 0.07%포인트 정도 도움이 된다.
◇인하 시기 놓쳤다는 비판 나와
한은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쳐 떠밀리듯 두 번 연속 금리를 내리는 상황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은은 올 2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예측하지 못했고, 3분기 성장률(0.1%)도 한은 전망(0.5%)을 크게 밑돌았다. 지난 8월 한은은 가계부채가 크게 느는 게 우려된다며 금리를 동결하면서 당시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잘못된 전망으로 경기를 판단하다 보니, 적절한 금리 인하 시기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이미 미국이 9월 금리 인하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요 국가들은 먼저 금리를 내리고 있었다”며 “지금이라도 금리를 내린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8월에 내리는 게 적절했다고 본다”고 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전략팀장은 “오히려 지금은 환율이 너무 높아 금리 인하를 했을 때 부담이 있고, 대출 금리가 인위적으로 올라 있어 금리를 내려도 시장 금리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며 “한은의 스텝이 꼬인 것”이라고 했다.
한은 경제모형실 추정에 따르면 금리 인하가 GDP(국내총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데 1년 정도 걸린다. 저성장 경고가 뚜렷해지기 전에 미리 금리를 내려 경기 하락세를 저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 실기론에 대해 “경제 성장률, 금융 안정, 물가 안정을 한꺼번에 보고 1년 뒤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며 “(8월에 금리를 내리지 않아) 금융 안정에 상당히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