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25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 원·달러 환율이 1461원대에 거래되고 있다./뉴시스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까지 탄핵을 추진하면서 외환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25일 새벽 2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주간 종가(오후 3시 30분)보다 5.5원 오른 1457.5원에 마감했다. 장중 1460.2원까지 오를 정도로 출렁였다. 환율이 4거래일 연속 1450원 선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글로벌 달러 강세에 국내 정국 혼란이 겹쳤기 때문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미 대선 전(103.42)보다 4.5% 오른 108.12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달러화에 대한 선호가 크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의 가치는 3.6% 떨어졌고, 중국 위안화(-2.7%), 유로화(-5.1%), 영국 파운드(-3.6%), 대만달러(-2.5%) 등 모든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국 불안을 겪는 한국의 원화는 하락 폭이 6%로 다른 나라들보다 크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낙폭만 4%에 달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면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고, 외환 당국의 개입이 없다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500원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최근의 강(强)달러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요즘처럼 엔화·유로화·위안화 등 세계 주요 국 통화가 미 달러화에 무릎을 꿇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후폭풍으로 원 달러 환율이 마지막으로 1450원 선을 넘었던 2009년 3월만 해도 엔화, 위안화, 유로화 등 글로벌 통화가 달러화와 동반 강세였다. 한국의 수출 경쟁국들 돈값이 비싸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한국의 무역 흑자는 43억달러로, 당시 월별 최대 흑자액 기록을 경신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달러 패권’이라고 할 만큼 달러화 가치만 나 홀로 독주하고 있다. 일본·유럽·중국 등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달러당 97.7엔이던 엔화 환율은 최근 157.4엔으로, 0.77유로였던 유로화 환율은 0.96유로로, 6.8위안이었던 위안화 환율은 7.3위안으로 오른 상태다. 한국 원화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1450원대다. 그만큼 다른 나라 통화들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고환율로 한국이 이익을 볼 가능성이 낮아졌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지금처럼 경쟁국 통화 가치가 동반 하락하면 수출에 플러스 효과가 별로 없다”고 했다.

달러화 독주는 미국 경제가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데다 관세 인상을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할 경우 달러화 가치가 더 오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독보적인 성장세에 트럼프의 재집권 이슈가 겹쳐 달러화 강세가 예전과는 다른 수준”이라고 했다. 이달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내년 미국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기존 전망보다 더 늦출 수 있다고 밝힌 점도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의 고환율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악성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간 한국 경제의 체질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크게 훼손되어 있고, 수출 구조가 반도체에 지나치게 쏠려 있고,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경제 기저가 늙어가고 있어서다. 허준영 서강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고환율은 급성 발작이라 대처가 가능했다면, 지금의 고환율은 만성질환이라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