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과 내수 부진 장기화, 탄핵 정국 등 겹겹의 불확실성에 노출된 한국 경제가 올해 1.8% 성장할 것으로 정부가 공식 전망했다. 약 2%로 추정되는 잠재 성장률(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밑도는 저(低)성장으로, 작년 7월 발표했던 올해 전망치(2.2%)보다 0.4%포인트 낮다. 정부는 정치적 혼란 때문에 ‘저성장 쇼크’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경제정책의 초점을 ‘상반기 경기 방어’에 맞추기로 했다. 신차(新車) 구매 시 개별소비세 인하(세율 5%→3.5%)를 1년 반 만에 부활해 상반기에 한시 적용하고, 85조원 규모의 새해 민생·경기 사업 예산 중 40%(34조원) 이상을 1분기(1~3월) 안으로 집행하는 등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이다. 또 상반기에 소비를 늘린 금액에 대해 20%를 소득공제해주기로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정부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를 올해 경제 여건으로 규정하고, 민생경제회복과 대외신인도 관리, 통상 환경 불확실성 대응, 산업 경쟁력 강화 등 4대 방향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반도체 등 주력 수출 업종의 경쟁 심화와 이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장벽 강화 등으로 수출 증가율은 작년 8.2%에서 올해 1.5%로 쪼그라들 것으로 봤다. 최 권한대행은 “경제 여건 전반을 1분기 중 재점검하고, 필요시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각종 민생 대책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여야정 협의체 논의를 거쳐 2분기 내 추경 편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여야 정치권의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경기 회복에 방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숙박 쿠폰 100만장 배포… 카드 더 쓰면 20% 추가 공제

정부가 잠재 성장률(약 2%)보다 낮은 새해 성장률 전망치(1.8%)를 공식화하면서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털) 약화로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치(2%)보다 낮은 1.8%로 전망해, 6개월 전 전망치(2.1%)보다 0.3%포인트 낮춰 잡았다. 정부 전망대로 1%대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현실화활 경우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두 지표가 2%를 밑돌게 된다.

최상목 권한대행/사진=연합뉴스

◇ “급한 불부터 끄자”

정부는 이날 발표한 새해 경제정책방향에 각종 내수 진작책을 앞세워 급한 불을 끄는 데 방점을 뒀다. 신차 개소세는 1월 3일 출고분부터 서둘러 앞당기기로 했다. 작년 10월에 차량 구매 계약을 했어도 출고 시점이 1월 3일 이후라면 개소세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는 지난 2018년 7월~2023년 6월 이후 1년 반 만이다. 4000만원짜리 신차를 구입한 경우 원래 개소세는 18%의 기본공제를 제외한 3280만원에 5%를 곱한 164만원이다. 그런데 3.5% 세율을 적용하면 이것이 115만원으로 49만원 줄어든다. 개별소비세액과 연동된 교육세·부가세 등을 포함하면, 줄어드는 세금의 총액은 70만원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정부는 또 올 한 해 민생·경기 사업의 40%를 1분기 안으로 집행하겠다고 밝히며, 정부 재정이 시장에 서둘러 풀리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가령 노인 일자리 사업은 작년에는 2월부터 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1월부터 급여가 지급되도록 했다. 전기차·수소차 구매 보조금 지급도 작년 2월 넷째 주부터 시행하던 것에서 올해는 1월 셋째 주로 앞당기기로 했다. 올 상반기에 구매한 전기차에 대해선 정부 보조금도 늘어난다. 기존엔 전기차 업체가 자체 할인해주는 금액의 20%를 정부가 추가 할인해줬는데, 이 추가 할인율을 최대 40%까지로 높인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민생 입법 재추진

작년에 추진하려다 연말 국회 파행으로 무산된 민생 입법도 다시 추진한다. 먼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을 고쳐 올 상반기 추가 소비분(전년 대비 5% 이상)에 대해 20%를 소득공제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추가 소비분의 10%만 공제했는데, 올해는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직전 3년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세금을 더 깎아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 기한을 작년 말에서 올해 말로 1년 연장하는 조특법 개정도 추진된다. 다만 대기업은 2년 전과 달리 실적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할 계획이 없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정부는 이외에도 수도권 이외 지역의 숙박 시설에 묵는 관광객들의 숙박비에서 최대 3만원을 할인해주는 할인 쿠폰을 1년간 100만장 배포할 예정이다. 설 연휴에는 전통시장과 골목형 상점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 할인율도 10%에서 15%(모바일·카드형 기준)로 높인다. 아내는 서울 대기업, 남편은 경남 공장에서 근무하는 방식의 주말부부가 월세 세액공제를 각각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올해 세법 개정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정부 발표와 별도로 서울시는 이날 서울 전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지역 화폐인 ‘서울사랑상품권’ 750억원어치를 오는 8일 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 발행하기로 한 1500억원어치 중 절반을 연초에 집중 발행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 상품권을 연초에 조기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년도 못 갈 경제정책 방향”

다만 비상 계엄 파문에서 줄탄핵으로 이어진 최근 정치 불안 상황에서 나온 새해 경제정책 방향은 경우에 따라 반년도 가지 못할 ‘임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탄핵소추된 상황에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인 정부가 혁신적이고 과감한 경제정책을 새롭게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집중한 정책 방향으로 6개월도 못 가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 수요를 상세히 파악한 후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보강해야 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