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400원대 초반은 3년 전보다 200원 정도 오르긴 했지만 달러 강세 등 국제 금융 환경 변화 때문이어서 불안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엄 이후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것은 우리의 문제, 정치 불안 때문입니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전 금융위원장)는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시 높아지지 않을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대사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며 극심했던 외환시장 불안을 한·미 통화스왑, 한·중 통화스왑 조치 등을 통해 안정시켰다. 또 2011년 국제금융차관보 시절에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아세안+한·중·일’ 금융협력 논의에 참여한 국제금융 분야 최고 권위자이다.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국제금융협력대사에 임명됐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는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끌어나갈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박상훈 기자

―국제금융협력대사가 하는 일은?

“계엄 사태 이후에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면서 대외신인도와 한국경제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미국·중국·일본 같은 주요 국가의 정부 관계자, 무디스·S&P·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국제기구, 해외투자기관 고위급 인사를 직접 만나, 정치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예정이다. 정치적 사태를 수습하는 절차들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강조하고,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을 우리 정부의 관련 부처와 책임자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현재 한국경제 상황은?

“오랫 동안 저성장 기조가 이어져 왔는데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3~4%에 달하던 시절은 아련하고, 지금은 1% 성장률에 머물러 있다. 작년에만 해도 수출이 우리 경제를 견인해 왔다. 하지만 금년에는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통상환경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수출은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인데, 수출 전망 또한 밝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또 장기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인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 각 분야의 주요 개혁 과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못했다. 노동 생산성 뿐 아니라 자본 생산성도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어서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한국경제가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대통령실

―외환 부문은 어떤가?

“먼저, 원·달러 환율이 현재의 1460원대까지 오르게 된 배경을 하나하나 뜯어볼 필요가 있다. 환율이 1300원대까지 올라온 것은 전세계적인 달러 강세의 여파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2020년 코로나 사태 당시 돈을 푸는 바람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발생하자 고금리 정책으로 물가 억제에 나선 결과이다. 이후 미국의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강달러 예상에 환율이 1400원 대로 올라갔다. 여기까지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전세계가 함께 겪은 현상이다. 예컨대 1유로는 한 때 1.57달러까지 올라갔으나 지금은 1.03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일본 엔화도 약세였다.

하지만 지난 12월 3일 계엄 선포 이후에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30원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개인적인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분석해 보면 1 달러당 1400원대 초반 수준은 3년 전보다 200원 정도 오르긴 했지만 국제금융환경의 변화 때문이어서 불안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계엄 이후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것은 우리의 문제, 정치 불안 때문이다.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원화의 추가적 약세(환율은 상승)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외환 당국은 대응할 힘이 있나?

“과도한 환율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달러 신규 차입은 물론이고 기존 차입금의 만기연장도 안됐다.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했다. 그래서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유동성(자금)을 공급하며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그 때는 외환보유액이 2800억 달러였지만 지금은 4100억 달러에 이른다. 더구나 과거에는 대외 부채가 대외 채권보다 많은 순부채국이었지만 지금은 대외 채권이 대외 부채보다 1조 달러 가까이 많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사 둔 채권과 주식보다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 사 둔 채권과 주식이 더 많다. 외환비상금인 외환보유액 뒤에 안전장치가 잘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경상수지도 작년에 8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내 달러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문제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기우이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가 넘었기 때문에 4000억 달러라는 심리적 기준선이 생긴 것이다. 5000억 달러가 넘으면 5000억 달러가 심리적 기준선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외환시장 상황이 훨씬 심각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외환보유액 2800억달러 가운데 한해 동안 800억 달러를 쏟아부어가며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지금은 그 때보다 보유액도 많고 시장 상황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은 과도한 불안에 대응하기에 충분히 넉넉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달러 강세 현상에 비상계엄 선포 사태까지 겹치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뉴시스

―해외 투자자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나?

“한국의 정치 불안에 가장 관심이 많다. 한국 경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외환시장과 재정건전성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불안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정치 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 탄핵 관련 일정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예측대로 명확하게 진행되는지 관심이 많다. 특히 헌법재판관 2명 임명 전에는 향후 정치 일정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했는데, 임명 이후에는 수개월 내에 탄핵 심판의 결론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불확실성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의 외환 부문이 튼튼하면 걱정 없는 것 아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됐을 때 금융계 사람들은 정말 큰 일이 났다고 했다.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마저 안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통치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지기 때문에 외환·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외국을 보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예컨대 어떤 중진국의 재정이나 외환 상태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통치 구조가 흔들리면 투자를 꺼리게 된다. 그 나라 전체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 경제시스템을 신뢰하지만 외국투자자들은 정보가 그만큼 많지 않다. 또 한국 외에 투자할 수 있는 다른 나라도 많다. 그래서 쉽게 투자를 유보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마저 흔들리면 정치 안정이 확실해질 때까지 셀 코리아(sell Korea·한국 주식과 채권 등 대량매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투자 기술적인 측면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 당 1400원 일 때 1억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 국내에 투자했던 사람이 예측 불가능한 정치 불안으로 환율이 1500원으로 튀어오르면 원화를 달러로 재환전해도 1억 달러가 안된다. 그러니 정치 불안 시기에는 투자를 유보하거나 철회할 수 밖에 없다.”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의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한국 투자를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사진은 지난 1월 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직원이 시장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UPI 연합뉴스

―현재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은?

“국내적으로는 정치의 불확실성,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이다.”

―이 불확실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나?

“첫째, 국내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둘째, 계엄 사태 이후에 국내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의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 외국투자자들이 빠져 나가게 된다. 넷째, 뷸확실성이 장기화 되어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S&P나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은 현재 한국의 정치 불안이 당장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정치적 긴장의 장기화로 경제 활동에 차질이 발생하면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는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불확실성이지만 한국은 아직 대비가 안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사진은 지난 1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손님을 맞는 모습./AFP 연합뉴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먼저 불확실성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여야정이 최근 합의한 국정협의회를 통해 국가 운영의 큰 의사 결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만 제대로 해도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본다. 대외 불확실성은 대응하기가 더욱 어렵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오는 20일에 출범하는데 우리가 효과적인 대응체제를 갖췄는지 불확실하다. 외교부와 통상 관련 부처가 협심해 미국과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여당과 야당이 합심해 뒷받침해야 한다.”

―이러한 대응책이 제대로 실현될까?

“여야 정치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아이가 죽지 않도록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나라를 먼저 안정시키는데 주력하는 쪽을 진정한 어머니라고 국민들은 판단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여야 정치인들이 먼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 12월 23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가진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뉴시스

―대응책이 제대로 실현될 경우 한국 경제는?

“국정협의회가 잘 운영되더라도 한국경제가 확 좋아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위기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탓에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심각하게 요동치고 이로 인해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위기 상황은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응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계엄 선포 직후에 겪었던 위기가 재발될 것이다. 외환시장은 불안하고, 내수 침체는 이어지고,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는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하지 않도록 정치권이 먼저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채재의 안정적 국정 운영 여부는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 권한대행이 지난 1월 9일 국정현안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기획재정부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통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이다. 외환보유액, 재정건전성 등 경제지표만 보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정부도 평상시 유지관리 업무는 그대로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대외신인도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통치 구조의 정상적인 작동 여부이다. 당장 수개월간 국정을 끌고 나가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힘을 받고 있는지, 국가기관과 국민들이 이 대행 체제를 존중하고 힘을 실어 주는지 여부를 외국투자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대통령 경호처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자기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를 권한대행에게 떠넘기는 통치 구조 불안의 표시라고 외국투자자들은 보고 있다. 더 이상 외국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금융시장의 투자 심리를 냉각시키지 않도록 국가기관들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