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내수 경기가 부진한 와중에, 계엄·탄핵 사태와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까지 겹치며 청년 고용이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탄핵 혼란을 겼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에도 고용이 주춤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미국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외부 충격까지 겹친 탓에 일자리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상황이다. 정부도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코로나 이후 역대 최소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정책은 보이질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대 이하 고용률 45% 밑으로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대 이하(15~29세) 청년 고용률은 44.7%로 1년 전보다 1.3%포인트 감소하며, 지난해 5월(-0.7%포인트)부터 8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청년 고용률이 45% 아래로 떨어진 건 코로나가 한창 기승하던 2021년 5월(44.4%) 이후 43개월 만이다. 12월 기준으로는 지난 2020년 12월(41.3%)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수시·경력직 중심으로 재편된 채용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던 청년들로선 최근 정치 혼란까지 겹치며 어려움이 가중된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인 2016년에도 동일한 경향성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이뤄지기 직전인 2016년 11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청년 고용률이 보합(0%포인트 변동)을 보이며, 2013년 9월(0.1%포인트)부터 2016년 10월(0.6%포인트)까지 38개월간 이어지던 증가세가 꺾였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인 2004년 3~5월에는 고용률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2016년 12월 청년 고용률은 0.4%포인트 증가세로 전환했지만, 이듬해인 2017년 1~2월 청년 고용률 증가세는 각각 0.2%포인트씩으로 둔화됐다. 그나마 당시 반도체 경기가 워낙 좋았던 덕분에 수출·투자가 견실하게 버텨주며 2017년 3월부터 증가폭(0.9%포인트)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朴 탄핵 당시와 정반대인 국제 경기 상황
문제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소추를 전후한 글로벌 경제 상황은 박 전 대통령 당시에 비해 훨씬 나쁘다는 점이다. 미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국제 교역이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품목의 대(對)미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도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기업들도 이러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선뜻 신규 채용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중견기업 800곳을 조사한 결과, 40.6%가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 중 25.9%는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2년 연속 취업자 증가폭 10만명대 그칠 듯
정부도 대내·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을 12만명으로 내다봤다. 지난 2020년(-21만9000명) 이후 최저 증가폭이다. 이같은 전망대로라면 지난해 15만9000명 증가한 데 이어 2년 연속으로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명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지난 1983년(12만6000명)~1984년(-7만6000명)에 이어 41년 만이다.
청년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비해 정부 대응이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에 발표한다던 2차 사회 이동성 개선방안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묶여서 나왔다. 지난해 5월 1차 발표 당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에 비하면 힘이 빠진 모양새다.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정책도 ‘청년 고용 올케어 플랫폼’ 기능을 확대하거나 ‘일경험 기회’를 1만명 늘리는 등 기존 정책을 답습·강화하는 차원에 그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직적인 노동 시장에서 단순히 신규 채용을 늘려야 한다는 접근은 효과적이지 않다”며 “기업들이 경기 상황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대신 취업·재취업의 고리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구직 부조 등 획기적인 재정 투입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