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조정 서두를 필요가 없다” -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추가적인 조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해, 당분간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음을 시사했다. /AP 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9일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연 4.25~4.5% 수준으로 동결했다. 지난해 9월 0.5%포인트를 시작으로 3번 연속 금리를 인하하며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기’를 표방했던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시장은 그간 99% 이상의 확률로 연준의 이번 동결을 예상해 왔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해, 연준이 금리를 추가로 내리기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물가상승률이 위원회의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했다.

이날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에선 금리 동결 배경보다 파월과 트럼프의 신경전에 관심이 더 쏠렸다. FOMC가 열리기 며칠 전인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파월은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에 대한 입장이 뭐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떤 답변과 언급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월이 트럼프와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질문을 피해 나갔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미국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

트럼프는 파월의 회견 1시간여 뒤에 트루스소셜 게시물로 다시 포문을 열었다. 그는 “파월과 연준이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문제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애초 파월을 2018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사람은 트럼프였다. 그러나 파월은 그해 4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1%포인트 올렸고, 트럼프는 격노했다. 트럼프는 ‘파월은 멍청하다(clueless)’는 등 말로 비난했지만 그를 해임하지는 못했다. 이후 바이든이 2022년 파월을 연임시켰다. 파월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퇴를 요구해도 내년 5월 임기 종료 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파월과 트럼프의 갈등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경제 상황은 파월에게 좀 더 유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도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해 9월 2.4%까지 떨어졌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월 2.9%까지 기어올랐다. 2017년 트럼프 1기가 시작했을 때 물가(2.1%)보다 훨씬 높고, 트럼프 1기 때 가장 높았던 물가(2018년 6~7월 2.9%)와 같은 수준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공약대로 관세를 올리면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는데, 인플레이션은 선거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트럼프도 잘 알고 있다. 시티그룹 수석 경제학자 네이선 시츠는 WSJ에 “트럼프도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번 대선에서 이겼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된다”고 했다.

실제 트럼프는 이날 파월을 비난하면서도 직접적으로 ‘금리 인하’를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이 에너지 생산을 늘리고, 규제를 없애는 등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와 파월의 신경전이 이어져도 트럼프가 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제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

이날 동결 이후 연준이 3월, 5월에도 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한층 높아졌다. 연준의 기준금리를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시장에선 6월에야 연준이 금리를 다시 내릴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파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어떤 답변도 하지 않을 것”

미국 연준이 뚜렷하게 ‘신중 모드’에 들어서 한국은행도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계속 금리를 낮추기에는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금리를 그대로 두는데, 한은만 금리를 낮추면 원화 유출과 환율 급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최근 금리를 동결하면서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언급할 만큼 꺾여 있는 경기 탓에 한은이 오는 2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를 내리되, 추가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연준이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언급함에 따라 현재의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취약 자영업자들은 경기 부진과 고금리의 이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 평가 정보에 따르면, 3개월 이상 대출 상환을 연체한 자영업자는 작년 3분기 14만6000명으로 1년 사이 41.8%나 급증했다. 한은이 보유한 ‘자영업 다중채무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연체율은 2.03%로, 1년 전보다 0.64%포인트 급증했다.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