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 11월 2%로 제시했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0.4%포인트 낮췄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 등 정치 불안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불러온 관세 전쟁이 수출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다.

정국 불안 여파가 올해 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까지 그 흐름에 합류한 것이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이 1.6%로 내려온 가운데, JP모건은 1.2%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되면 한국 경제는 2023년(1.4%)과 지난해(2%)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잠재성장률(2%)을 밑돌거나 턱걸이하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그래픽=양인성

◇KDI “올해 경기 둔화 틀림없어”

11일 KDI는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1.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석 달 전인 지난해 11월에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로 제시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올해 경기가 기존보다 둔화되는 국면인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KDI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거나 통상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 성장률 전망이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KDI가 내놓은 전망치는 지난달 말 JP모건, 시티, 바클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성장률 전망치인 1.6%와 같은 수준이다. KDI가 IB들보다는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KDI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 상황이 생각보다 어둡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KDI 전망치는 최근 정부(1.8%)나 국제통화기금(2%) 등보다 낮고,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제시한 전망치(1.6~1.7%)의 최저치에 해당한다.

◇불확실성에 떠는 한국 경제

KDI는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로 대내외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정규철 실장은 “트럼프 정부 들어 예상보다 빠르게 중국 등에 대해 관세가 매겨졌고, 시간이 지나면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했다. 국내 정치 불안에 대해서도 “적어도 2분기면 해소될 것으로 전제하고 있고, 만일 그보다 길어질 경우 전망치를 더욱 낮출 수 있다”고 했다.

KDI는 내수, 수출 등 한국 경제를 버티는 두 가지 성장 엔진이 모두 예상보다 부진할 것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1.8%로 예상됐던 민간 소비 증가율 전망은 1.6%로 낮췄고, 수출 증가율 전망도 1.9%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버팀목 수출도 옛말, 일평균 수출 6.4% 줄어

작년에 그나마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 실적은 올 들어 크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8.2% 증가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0.3% 급감했다. 설 명절이 끼어 있었던 탓이라지만, 이달 1~10일 수출도 0.8% 늘어난 데 그쳤다.

게다가 이달 1~10일 조업 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6.4% 감소했다. 월초 일평균 수출액 기준으로 2023년 9월(-14.5%)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2023년은 반도체 경기가 주저앉으며 수출이 바닥을 찍었던 시기다.

이달 1~10일 품목별로도 반도체(1.8%)와 승용차(27.1%) 등 주요 수출 품목은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석유 제품(-22.3%)과 자동차 부품(-27.1%), 가전제품(-33.7%), 철강(-8.8%) 등은 중국산 저가 공습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KDI는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제외하면 여타 수출 품목들의 기여도는 올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액 공제를 통해 투자 확대를 유도하거나 산업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구축해주는 등의 방안으로는 당장 수출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며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돈줄이 막힌 기업에 자금을 적극 지원하는 등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