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일 비트코인을 포함한 5개의 코인을 전략 비축하겠다고 밝히자, 전 세계 가상 자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리플(XRP)과 솔라나(SOL), ADA(에이다)를 포함하는 가상 자산 전략 비축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 다른 가치 있는 가상 자산도 비축에 핵심이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자 지난달 28일 7만8000달러 선까지 추락했던 비트코인은 이날 9만4000달러 선으로 수직 상승했고, 이더리움도 하루 전보다 13% 오른 2500달러까지 급등했다. 미국 가상 자산 자산관리업체인 21쉐어즈의 페데리코 브로케이트 책임자는 “미국 정부의 가상 자산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라고 했다.

◇원유처럼 코인 전략 비축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줄기차게 가상 화폐에 대한 우호적인 말을 쏟아냈지만, ‘비축(reserve)’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CNBC는 ‘비축’은 정기적으로 코인을 적극 사들이는 것이고, ’보유·축적’은 미국 정부가 보유한 코인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고 구분했다.

시장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 비축(Strategic Reserves)’하겠다고 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략 비축이란 원유나 곡물, 희토류 등 원자재를 위기 상황이나 공급난에 대비해 미국 정부 차원에서 매입해 미리 쌓아두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략 비축유가 대표적이다. 1973~1974년 중동 국가들이 원유 수출을 제한하며 가격이 뛰자, 1975년 미국 정부는 원유 비축을 시작했다. 비트코인도 원유처럼 집중적으로 사들여 비축하겠다는 것이어서, 비축용 코인 수요로 인해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양인성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 비축하겠다고 밝힌 코인에는 글로벌 시가총액 1·2위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외 3개의 ‘밈코인’(유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가상 화폐)이 포함됐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과 직·간접적 인연이 있다. 리플은 제작사가 지난해 미국 의회 선거에서 친(親) 가상 화폐 성향인 공화당 의원들에게 간접적으로 기부한 바 있다. 솔라나는 1월 트럼프 취임을 기념해 발행된 ‘트럼프 코인’의 발행 네트워크로 선정됐다.

◇비트코인 가격 띄워, 35조 빚 갚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인을 전략 비축하겠다고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가상 자산 시장을 다시 띄우기 위해서다. 비트코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6만달러에서 10만9000달러까지 급등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또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 자산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달 말 7만80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가상 자산 비축은 바이든 행정부의 수년간 부패한 공격 이후 위기에 빠진 이 산업을 격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 부채 해결을 위한 숨은 카드로 코인의 전략 비축을 들고 나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코인 가격을 띄운 뒤, 이를 써서 미국의 빚을 줄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어쩌면 가상 화폐로 35조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부채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원유나 곡물처럼 비트코인이 없다고 미국이 당장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종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 비축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코인 전략 비축’ 위해 법 개정 필요

트럼프 대통령의 코인 전략 비축 구상을 실현하려면 관련법 개정이 수반돼야 한다. 미국은 1973년 오일쇼크 후 관련 법을 제정해 1977년부터 원유를 비축한 경험이 있다. 희토류도 ‘전략·중요 자원 보유법’을 통해 전략 자산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의 신시아 루미스 미 상원의원(와이오밍)은 향후 5년간 미국이 매년 20만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비트코인 2024 법안’을 낸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준비 자산으로 보유한 7000억달러어치의 금(金)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동의를 받아야 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코인을 연준 준비 자산으로 보유하는 게 아니라 전략 비축을 한다면 연준의 동의가 필요 없다. 특히 현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크다.

☞전략비축과 준비자산

전략비축(strategic reserves)은 공급이 줄면 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평시에 비축하는 물자를 가리킨다. 미국은 원유·백신·희토류 등을 전략비축 품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반면 준비자산(reserve asset)은 각국 중앙은행이 대외결제를 위해 보유하는 자산이다. 달러 등 기축통화와 금,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 등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