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인구의 경북 봉화군, 군청에서 자동차로 50분 걸리는 제련소 있는 마을 석포리에 작년 11월 어린이집이 생겼다. 연면적 751㎡ 지상 2층 건물을 보육실 5개, 놀이방, 책방 등으로 꾸몄다. 요즘은 5세 이하 동네 아이들 10여 명이 뛰어놀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하나금융그룹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사업인 ‘100호 어린이집 건립 프로젝트’의 마지막 100번째 퍼즐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총 1500억원 규모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2018년부터 시작됐다. 보육 교사 등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여성 경력 단절 예방 등 다양한 효과를 거뒀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육아 부담이 출산의 기쁨을 막지 않고, 사는 지역과 직장 환경이 보육의 한계가 되지 않는,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 금융회사가 가계와 기업에 돈을 공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저출생 등 사회 문제 해결에 팔을 걷고, 든든하고 따뜻한 사회의 보호막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한다. 미래의 손님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금융사들은 스스로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 지배구조 개선) 경영에 나서며, 거래하는 기업들을 독려하고 지원하기도 한다.
◇저출생 등 사회문제 해법 마련
저출생 등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금융사들은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신한은행은 2023년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출산을 희망하는 난임 부부 585쌍에게 난임 진단 검사비를 지원했다. 이 중 35%가 난임 적기 진단과 조기 치료를 통해 임신에 성공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2차 연도 사업을 위해 인구보건복지협회에 후원금 2억원을 전달했다. 협회를 통해 중위 소득 150% 이하 난임 부부에게 진단 검사비, 치료비 등 의료비를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저출생 문제 극복을 위한 사회 전체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선도적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KB금융은 지난해 8월 소상공인의 출산·양육을 지원하기 위한 ‘저출생 위기 극복 공동협력 업무협약(MOU)’을 서울시와 체결했다. 소상공인 부부에게 난임 치료비와 산후 건강 관리비를 지원하거나, 임신과 출산으로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소상공인에게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테면 ‘자영업자 출산휴가’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소상공인은 직장인과 달리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어 출산과 육아가 바로 생계 활동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은 총 160억원을 투입해 서울·부산시 등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소상공인의 출산·육아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외 계층 자립 도와
작년 9월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에서 ‘모이면 모일수록 선한 힘이 커지는 콘서트(모모콘)’가 열렸다. 2회째인 모모콘에 규현, 볼빨간사춘기, 멜로망스 등 많은 가수가 참여했다. 콘서트장에는 글로벌 NGO 굿네이버스의 결식 아동 체험 부스 등 NGO 홍보 공간도 마련됐다. 행사를 개최한 우리금융그룹의 임종룡 회장은 이날 저소득층 시청각 장애 아동과 청소년의 수술·재활 치료비를 지난해보다 2배 늘려 400명에게 총 20억원을 지원하는 ‘우리 루키(Look&Hear) 프로젝트’ 시즌2를 발표했다. 우리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하고(Look), 귀가 들리게(Hear) 한다는 뜻이다.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서는 ‘문을 여는 법’이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가 공개됐다. 독립을 위한 첫걸음이었던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주인공 자립 준비 청년 ‘하늘’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 양육 시설과 위탁 가정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끝나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청년을 뜻한다. KB국민은행이 배우 김남길과 힘을 합쳐 만든 이 영화는 사회에 첫발을 딛는 자립 준비 청년들의 안전한 정착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KB의 고객 범주에 ‘사회’를 포함해 공동 상생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신한금융은 장애 청년 글로벌 리더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장애청년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장애 청년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프로그램이다. 2005년 출범 이후 20년간 청년 1086명을 지원해왔다. 하나금융은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2022년부터 발달장애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 공모전 ‘하나 아트버스’를 개최해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장애인과 고령층을 위한 유선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전담 상담사가 수어와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천천히 말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벗 서비스’는 2008년부터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농촌·독거 어르신과 국가 유공자를 대상으로 주 1회 이상 말벗 통화를 진행한다. 금융·건강이나 생활 정보를 안내하고, 불편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폭염, 태풍, 수해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서비스를 주 3회까지 늘려 어르신들의 피해를 미리 확인하고 막는다. 매주 이렇게 통화하는 어르신이 600여 명에 달한다. 이찬우 농협금융 회장은 “농협금융은 농업·농촌과 지역사회 지원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 이행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우리금융은 2012년 금융권 최초로 다문화 가족을 돕기 위해 공익재단인 ‘우리다문화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다문화 가족의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해 장학, 교육, 복지 사업 등 여러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장학 사업은 재단의 대표 사업으로 지금까지 다문화 가족 초·중·고·대학생 6700명에게 장학금 80억원을 지원했다. 지금까지는 연간 800명을 지원해왔는데, 올해부터 10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2018년부터는 체육·미술·음악·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문화 학생들을 선발해 특기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금융 본업으로 사회 공헌
금융 본업을 상생과 연결하기도 한다. 학자금 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50%를 현금으로 30만원까지 돌려주는 우리은행의 ‘청년 학자금 대출 상환 지원 캐시백’, 결혼·임신·난임 치료·출산·다자녀 가구, 기초연금 수급자에 해당할 경우 최고 연 9% 금리를 제공하는 신한은행의 ‘패밀리 상생 적금’ 등은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상생·협력 금융 신상품’으로 선정한 상품들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고객들이 자산을 상속할 때 일정 부분을 기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신한금융은 ‘신한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한 고객들이 향후 자산 상속 시 사전에 정해놓은 비율만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것을 독려할 계획이다.
다양한 방법의 금융회사 사회 공헌은 그 규모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2016년 4000억원 수준이던 것이 2019년(1조1359억원)에 처음 1조원을 넘겼다. 2023년에는 1조6349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이익 대비 7% 넘는 규모다. 포천 100대 기업에 드는 글로벌 기업 평균이 2%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금융사들이 세계 수준을 한발 앞서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