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전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66) 메리츠금융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한국 주식 부호 순위 1위에 올랐다. 6일 기업 분석 업체인 한국CXO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이날 장 마감 기준으로 조 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12조4334억원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2조1667억원)보다 2667억원(2.2%) 많다.

조 회장은 메리츠금융의 지분 51.25%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 메리츠는 주가가 60% 급등하며 조 회장의 자산을 불렸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가가 지난 1년 동안 25% 정도씩 하락한 것이 순위 바뀜의 결정타였다.

◇금융지주 시가총액 2위에 올라

한진가 4남인 조 회장은 2002년 보험 증권사 등 금융 계열사를 물려받았다. 맏형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둘째가 한진중공업, 셋째가 한진해운을 맡게 된 뒤였다. 조 회장은 2015년 포브스 인터뷰에서 “내가 ‘남은 회사’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고 보니 사정이 변했다.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은 사라졌고, 대한항공의 시가총액(9조원)은 메리츠금융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래픽=백형선

메리츠는 견고해 보이던 KB·신한·하나·우리 등 금융지주 4강 체제를 휘젓고 있다. 금융지주 시가총액 순위에서도 KB금융 바로 다음이다. 2020년 말까지만 해도 메리츠금융의 시가총액은 5조5000억원 수준으로 주요 금융지주 시가총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우리금융을 추월했고 지난해 하나금융, 올해는 신한금융을 넘어섰다.

당기순이익에서 은행 중심의 다른 금융그룹들을 위협하고 있다. 메리츠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2조3334억원으로 5조원에 달하는 KB금융이나 4조5000억원이 넘는 신한금융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5위 금융그룹인 NH농협금융(2조4537억원)을 턱밑에서 겨누고 있다.

◇공격적인 대출 의사 결정

메리츠 약진의 비결로 금융가에서는 조 회장의 성과주의를 든다. 메리츠(Meritz) 사명도 ‘성과주의(meritocracy)’에서 따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금융권 관계자는 “메리츠는 사내에서도 ‘로열티(충성심)는 필요 없다. 실적으로 보여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한국에선 잘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성과주의 문화”라고 했다. 대신 돈으로 확실한 보상을 한다. 주요 계열사인 메리츠화재의 경우 연봉 6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며, 김용범 부회장 등 전문 경영인의 연봉이 조 회장을 추월하는 경우도 잦다.

공격적인 의사 결정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은 롯데건설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업계에서 롯데건설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너무 경색돼 당국도 메리츠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는데 메리츠가 굉장히 빨리 대출 의사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투자할지 말지를 금융지주 수뇌부가 모여 한자리에서 결정하는 ‘원테이블(one table) 회의’를 통한 의사 결정 방식 덕분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에선 리스크 검토 단계에서 막혔을 것”이라고 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은 기본이다. 메리츠는 당시 롯데에 9000억원을 대출해 이자 연 12%를 챙겼다. 1년 남짓 동안 1000억원을 남긴 장사였다.

작년 당기순이익 2조원대

◇적극적인 배당으로 주가 부양

메리츠는 ‘대주주의 1주와 일반 주주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며 주주 환원을 강조한다. 적극적 주주 환원을 앞세워 주가를 부양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펼치기 전부터 주주 환원율 50%를 목표로 내세우며 투자자에게 어필했다. 작년에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등으로 순이익 53%를 주주 환원에 썼다. 블룸버그는 지난 5일 “보험 사업을 늘리고 지주 회사 모델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메리츠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비교해 ‘메크셔 해서웨이’로 불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물론 주주 환원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장 많은 주식을 갖고 있는 조 회장이다. 조 회장은 2023년 결산 기준 배당금으로 2307억원을 받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1549억원)이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1331억원), 구광모 LG그룹 회장(778억원)보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