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 50여 일, 오락가락 관세 정책으로 나스닥 지수가 7% 넘게 하락하는 등 월스트리트가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그의 경제팀은 연일 “주식시장엔 관심 없다”는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 유예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결정이 주가 하락 때문인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시장과 전혀 관련이 없다. 나는 심지어 주식을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대신 그가 관심사라며 수차례 밝힌 것은 채권 금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의회 연설에서 “오늘, 금리가 아주 큰 폭으로 하락했다. ‘big beautiful drop(크고 아름다운 하락)’”이라며 미국채 10년물 금리를 콕 집어 얘기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CNBC 인터뷰, 뉴욕경제클럽 연설 등 자리가 있을 때마다 “여러분도 알아차렸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발언을 중단했다. 우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채 금리를 중시하는 이유가 뭘까.
◇‘아름다운 하락’…트럼프가 국채 금리에 목매는 이유
트럼프 행정부가 국채 금리 낮추기에 집중한다는 걸 숨기지 않는 이유는 일단 막대한 국가 부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월 말 연방정부 부채는 36조2000억달러다. 지난 15년간 두 배로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달러를 풀어 경기 방어하느라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풀린 돈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 금리를 밀어올렸고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연방정부가 이제까지 발행한 채권에 대한 누적 평균 이자율은 현재 연 3.28%로 2021년(평균 연 1.61%) 대비 두 배가 됐다. 연간 이자 부담만 1조1580억달러(약 1684조원·작년 9월 기준)로 작년 미국 국방예산(8860억달러)을 가뿐히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예산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올 초 연 4.8%까지 오른 후 연 4.1%대로 떨어졌다가 현재 연 4.2% 언저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 국채 금리는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와도 강하게 연동된다. 주택 대출 금리도 떨어뜨릴 수 있다. 최근 시장 불안으로 안전 자산인 미 국채 수요가 늘자, 이와 연동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30년 평균)도 연 7% 밑으로 내려왔다.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2023년 말 연 8%에 도달한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그럼에도 오랜 세월 연 2~3%대 모기지 금리에 익숙했던 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관세 카드로 미 국채까지 강매?
트럼프 집권 1기인 2017년 단행한 감세 조치가 올해 만료되는데, 이를 계속 연장하기 위해선 재정을 확보하는 게 트럼프 2기의 새로운 과제라는 것도 문제다. 미국 정부가 이른바 ‘부채 디톡스(해독)’를 위해 주요국을 상대로 관세를 올려 재정 수입 늘리기에 필사적으로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분석이다.
‘국가는 어떻게 파산하는가’라는 책 출간을 앞둔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는 최근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언제 올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마치 심장마비와 같다. 파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라며 미국의 부채 위기를 경고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현재 6% 수준인)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즉각 줄일 것을 촉구하면서 “채권을 개인, 기관들, 중앙은행들, 국부펀드들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달리오의 지적처럼 미국은 관세 카드를 이용해 중국 정부 등 ‘큰손’들에게 미 국채를 더 사게 해 국채 금리를 낮추려고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4년만 해도 미 국채의 49%를 외국인이 갖고 있었는데, 작년엔 이 비율이 34%로 뚝 떨어졌다.
이 밖에 미국 정부가 동맹 채권국들에 기존 국채를 100년 만기 무이자로 교환하게 하는 방안, 대형 은행들이 더 많은 국채를 사게 만드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