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김모(72)씨는 지난 2000년 자신이 사망하면 아들 두 명이 1억원을 사망보험금으로 받게 되는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20년 동안 15만원씩 총 3600만원을 냈다. 그런데 현재 생활이 어렵다 보니 당장 한 푼이 아쉽다. 이 보험금을 어떻게든 쓰고 싶지만, 당장 보험을 해지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사망보험금의 40%인 4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김씨처럼 종신보험 가입자도 보험을 깨지 않아도 매달 20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연금을 받고 남은 보험금은 자식들이 사망보험금으로 받는다.

정부는 11일 열린 제7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사망한 뒤 유족에게 지급되는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가입자가 살아있을 때 연금 형태로 매달 받아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르면 올해 9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종신보험은 가입자가 사망한 이후 자녀 등 가입자가 미리 지정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만약 노후 생활이 어려워 본인이 낸 보험금을 쓰려면, 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데 이 경우 사망보험금의 약 60% 정도를 잃게 된다. 앞으로 종신보험 가입자는 이 같은 손해 없이 일정 비율만큼 연금과 사망보험금으로 나눠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픽=양인성

◇65세부터 매달 16만~30만원 받을 수 있어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이른바 ‘3층 연금’에 가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 절반 이상은 노후가 불안하다고 느낀다. 통계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퇴한 가구의 월 최소 생활비(2인 기준)는 240만원, 적정 생활비는 월 336만원이다. 그런데 생활비에 ‘여유 있다’는 답한 비율은 10.5%에 불과하고, 절반이 넘는 57%는 ‘부족하다’는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과거 사망 후 자식을 위해 가입했던 종신보험 사망보험금을 연금으로 활용해 노후에 보태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연금 수령액은 연금을 늦게 받을수록, 사망보험금 중 연금으로 받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많아진다. 예컨대 40세에 사망보험금 1억원짜리 종신보험에 가입한 소비자가 매달 15만1000원씩 보험료를 20년 동안 납입(총 3624만원)한 경우를 가정하자. 이 경우 65세부터 20년 동안 보험금의 60%를 연금으로 받고자 할 경우 매월 16만원씩 받을 수 있다. 대신 자녀 등이 받아갈 사망보험금은 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연금으로 받는 비율을 90%로 높이면, 연금액은 매월 23만원으로 증가한다. 반대로 사망보험금은 1000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정부는 사망보험금 중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비율을 납입한 보험금의 최대 90%로 제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망을 보장한다는 종신보험의 특성을 남기려는 조치”라고 했다.

사망보험금은 연금 외에도 요양·간병·주거·건강관리 같은 서비스로 수령도 가능하다. 보험사와 제휴한 요양 시설에 지급해 입소 비용의 일부를 충당하거나, 암이나 뇌출혈, 심근경색 등에 대한 전담 간호사 배정 등에 필요한 비용으로 쓸 수도 있다.

◇자녀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사망보험금을 연금으로 받으려면 65세가 넘어야 한다. 또 보험 계약 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하고, 납입 기간도 5년 이상인 종신보험이 대상이 된다. 여기에 보험료 납입이 완료되고, 신청 시점에 보험 계약 대출이 없으면서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아야 연금화할 수 있다. 이 밖에 변액종신보험처럼 금리가 수시로 변하는 보험은 수령 금액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망보험금 9억 넘으면 제외

또 사망보험금이 9억원이 넘는(평균 매월 납입 보험료가 150만원 이상) 종신보험은 자산가들이 주로 가입하기 때문에 제외됐다.

현재 판매되는 종신보험에는 연금화가 가능한 특약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종신보험이 처음 팔린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팔린 종신보험에는 연금화와 관련된 특약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과거 종신 보험을 판매한 보험사들과 협의해 연금화할 수 있는 특약을 일괄 부여하기로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사망보험금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보험 계약은 약 33만9000건이고, 연금화가 가능한 금액은 약 11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사망보험금을 부모가 생전에 연금으로 받을 경우 상속이 예정된 자식들과 부모 사이에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상속자인 자녀가 받아 갈 사망보험금이 줄어드는 만큼 민원‧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상속자의 동의를 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