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회장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한 홈플러스의 대주주 MBK 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16일 홈플러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재(私財)를 출연하겠다고 발표했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들을 위해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유통업계에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투자자 피해는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론 압박에 사재 출연한다는 김병주

MBK파트너스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홈플러스 회생 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김병주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 주주사인 사모 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16일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사재 출연 의사를 밝혔다. 홈플러스에 물건을 대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결제 대금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김광일·조주연(오른쪽) 홈플러스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업 회생 절차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김 회장 측은 “소상공인 대금 규모를 파악한 뒤 사재 출연 규모도 정하겠다”면서 구체적인 사재 출연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홈플러스 측은 “대기업과 브랜드 점주를 제외한 영세업자 채권부터 지급을 완료할 것”이라며 “협력사와 임대 점주에게 지불할 상거래 채권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지급하겠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당장 홈플러스가 상거래 대금을 처리하는 데도 현금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홈플러스 입점 업체들은 “실제 대금이 지급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 채권 2000억원 사들인 개인 투자자는 여전히 불안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날 발표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홈플러스 채권을 사들인 채권 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러스 단기 채권 대부분이 대형 기관 투자자가 아닌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 기업어음(CP), 카드 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 단기 사채 등 단기 채권 판매 잔액은 총 5949억원(지난 3일 기준)이다. 이 중 증권사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규모는 2075억원(676건)에 달했다. 또 일반 법인에 판매된 규모는 3327억원(192건)인데, 대부분 기술·전자·해운업 분야 중소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성규

투자자들은 채권의 불완전 판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 회생 절차 착수 발표 직전인 지난달 한 달 동안 홈플러스가 발행한 단기 채권 규모가 2000억원이나 되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전에 원금 손실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기업 회생 절차 가능성을 알고도 채권을 발행했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발행사인 홈플러스와 판매사인 증권사의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서는 약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채권 상환 등에 1조3317억원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 홈플러스의 비효율 구조를 개선하고, 성장에 투자하기 위해 4300억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신용 등급이 A3에서 D로 떨어지면서 단기 금융 상품 차환(이미 발행된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이나 유상증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조원대 부동산 펀드 투자 피해도 우려

이 밖에도 금융권 안팎에서는 홈플러스 매장을 기초 자산으로 삼은 1조원대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와 부동산 펀드에 대한 손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는 매장을 팔아 재임차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을 통해 자산을 유동화해 왔는데,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임차료를 내지 못하고, 부지 매각도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금융 당국은 홈플러스 부지를 기초로 한 부동산 펀드에 대한 점검에도 착수한 상태다.

◇국민연금도 피해 우려

또 국민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도 홈플러스 사태의 불똥이 튈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6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는데, 원래대로라면 만기 이자율 연 복리 9%의 수익률을 감안하면 9000억여 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이나 배당금 수령 등을 통해 3131억원 정도만 회수했다. 또 홈플러스가 회사채를 갚지 못할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선 일부 채권담보부증권에 대한 기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올해 10월에 560억원, 내년 4월에 300억원의 만기가 각각 도래하는데, 만약 홈플러스가 만기 때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보증을 선 신용보증기금은 자체 기금으로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