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2월보다 0.2%포인트 낮췄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물가는 뛰어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도 0.3%포인트 낮추면서 “관세를 다시 낮추는 데 합의하면 글로벌 성장세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7일 OECD는 ‘중간 경제 전망’을 발표하고, 올해와 내년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각각 3.1%, 3.0%로 전망했다. 작년 12월 내놓은 전망치(2년 연속 3.3%)보다 각각 0.2%포인트, 0.3%포인트씩 낮춘 수치다. OECD는 매년 3·9월에 중간 경제 전망을 발표하고 5~6월과 11~12월 한 차례씩 경제 전망을 내놓는다. 이번 전망대로라면 올해와 내년 전 세계는 코로나가 덮쳤던 지난 2020년(-3%)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이게 된다.
◇관세 전쟁이 국제 분업 고리 끊어
OECD는 관세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분절화’를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국제 교역이 줄어들면서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오르게 되고, 각국이 자국우선주의 기조 아래 국방비 등 지출을 늘리며 장기적인 재정 지출 압박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OECD는 올해와 내년 주요 20국(G20)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 2.9%에서 각각 3.8%로, 3.2%로 높였다. OECD는 “무역 장벽이 불러온 물가와 지출 압박 때문에 투자와 가계 소비도 줄어들 우려가 크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 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들부터 전방위적인 경기 위축 압박을 받을 것으로 OECD는 전망했다. 미국의 첫 관세 전쟁 상대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표적인 사례로, 캐나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작년 12월 2%에서 이번에 0.7%로 1.3%포인트 낮아졌다. 멕시코도 같은 기간 1.2%에서 –1.3%로 2.5%포인트나 깎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교·안보 우방국끼리는 경제적으로도 협력하는 질서가 구축돼있었다면,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경제적 이익을 주지 못하면 우방국이어도 장벽을 세우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0.4%p, 독일 -0.3%p 하향 조정
OECD는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2.4%에서 2.2%로 낮췄다. 일본(-0.4%포인트)과 독일(-0.3%포인트), 영국(-0.3%포인트) 등도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OECD는 “유로존의 경우 지정학적·정책적 불확실성이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트럼프발 관세전쟁 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불확실성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하며, 작년 12월 전망치(2.1%)보다 0.6%포인트 낮췄다. 최근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1.5%)와 같은 수준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1.6%)이나 정부(1.8%) 등이 제시한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만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4.7%에서 4.8%로 0.1%포인트 상향됐다. OECD는 “중국의 경우 관세 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정책 지원 강화로 대부분 상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재무장관, “경기침체 오지말라는 보장 없다”
관세전쟁의 진원지인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전쟁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각) N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해 “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예상했겠느냐”면서 “경기 침체가 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미국 증시 하락에 대해 “주가가 계속 올라가는 것은 과도한 희열 상태이며, 이는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다. 조정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일”이라며 “우리가 강경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이것은 지속 가능한 것으로 조정이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최근 S&P500지수가 한달 전 고점에 비해 8% 넘게 하락하는 등 미국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에 대한 우려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9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 침체(recession)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과도기에 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부(富)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큰일이며 이것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답했다. 미국 경제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중국·유럽·캐나다 등을 상대로 한 관세 전쟁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