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힌 영남권 산불은 열흘 만에 잡혔지만, 먹거리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4월에 꽃을 피우는 사과와 6월에 수확하는 마늘, 10월에 본격적으로 채취하는 송이버섯 등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30분 기준으로 안동시와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에 걸쳐 총 1490ha의 과수원이 산불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상당수가 사과를 키우는 과수원으로, 경북 지역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62%를 차지하는 사과 주산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사과나무가 다행히 불에 타지 않았더라도, 산불 열기를 견디느라 나무들의 생장이 부진하면 4월에 망울을 터뜨려야 할 꽃이 늦게 피면서 수급이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전국 마늘 생산의 38%를 담당하는 의성군 농가들도 비상이 걸렸다. 의성 마늘은 봄철에 푸릇푸릇한 잎이 올라오고, 6월에 생장을 마치면 수확하는 ‘한지형’이다. 그런데 이번 산불로 산비탈에 있는 농가들의 마늘은 잎이 다 타버리거나 누렇게 변했다. 다행히 이 지역 마늘밭 대다수가 평야에 있어 화마를 피했다고는 하지만, 여름철 마늘 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울창한 소나무숲 밑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은 초토화된 수준이다. 영덕과 청송 두 곳에서만 전국 송이 생산량의 28%를 담당하는데, 이번 산불로 소나무가 타버리면서 오는 10월 송이 채취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 지역 버섯 농가들은 송이를 채취하는 10월 한 철 장사로 소득의 대부분을 거두는데, 이번 산불로 향후 몇 년간은 소득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이미 작년 이상기후로 주요 작물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터라, 연중 ‘애그리플레이션(agriflation·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의 합성어)’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3월 하순(20∼30일) 무(20㎏) 중도매인 판매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5.6% 올랐고, 배추(10㎏) 가격도 17.5% 상승했다. 국산 깐 마늘(20㎏)도 18.4%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