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종시에 있는 한 중앙 부처 A 사무관은 갓 입사한 후배 공무원이 “오늘은 어린이날”이라고 하길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과장이 출장으로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워, 과 직원(어린이)들끼리만 사무실에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당초 세종 관가에서 부서장이 자리를 비운 날은 ‘무두절(無頭節)’이라고 불렸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머리(상사)가 없는 날’이라는 뜻이다. 부서장이 일상적으로 보고를 받고 업무를 배분하는 관료 조직 특성상 과장 등 부서장이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직원들이 할 일은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부서장이 없으면 휴일처럼 편하다고 해, ‘머리(상사)가 없어서 쉬는 날’인 ‘무두절’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5년 차 미만의 Z세대 공무원들은 상사가 없다는 점보다는 실무 직원들만 남았다는 점에 주목해, ‘어린이날’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무두절’이란 말에 익숙한 386세대나 X세대 공무원들은 낯설다고 한다. A 사무관은 “조직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주니어 공무원들의 성향이 고스란히 녹아든 표현”이라고 했다.
주니어 공무원은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동료 직원을 가리킬 때 ‘사무관’ ‘서기관’이라는 직함을 ‘삼’ ‘서’라는 한 글자로 짧게 줄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과장에게 홍길동 사무관에 대해 얘기할 때 ‘홍 사무관’ 대신 ‘홍삼’, ‘강 서기관’ 대신 ‘강서’로 부르는 식이다.
관가 특유의 엄격한 보고 체계도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과장을 거쳐 국장으로, 또 국장을 거쳐 실장으로 보고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필요한 경우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국장을 직접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게다가 국장에게 보고할 때 슬리퍼나 뒤가 트인 크록스 신발을 신고 가는 등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던 차림 그대로 찾아가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한 중앙 부처 과장은 “요즘 직원들은 격식을 따지기보다 실제로 맡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실무를 방해하는 수준의 허례허식이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자칫 공직 기강이 풀릴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