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시중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국내 금융지주사 10곳이 지난 한 해 24조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업권별로 보면 은행의 당기순이익이 16조3000억원으로, 1년 사이에 1조원 가까이 늘었다. 대출 금리는 올리고 예금 금리는 깎아 이자 수익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을 줄여 집값을 잡으려던 금융 당국의 어설픈 관치(官治)도 이자 장사에 멍석을 깔아줬다.

1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금융지주회사 경영 실적’에 따르면 작년 금융지주회사 10곳(KB, 신한, 하나, 우리, NH, iM, BNK, JB, 한투, 메리츠)의 순이익은 23조8478억원으로 전년(21조5246억원)보다 11% 늘었다. 금융지주회사의 순이익은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21조원대에 머물렀지만, 한 해 만인 작년에 3조원 가까이 불었다.

갈수록 벌어진 은행의 예대 금리 차(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차)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0.43%포인트 선이었던 5대 은행의 예대 금리 차 평균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 당국 관계자들이 가계 부채 증가를 막는다며 은행에 대출 억제를 수차례 요구하자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마음 놓고 대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명분을 금융 당국이 준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예대 금리 차가 1.17%포인트로 반년 만에 0.8%포인트 벌어졌다. 벌어진 예대 금리 차만큼 은행 수익이 늘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대출 억제책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어설픈 정책이 은행 배만 불렸다”고 했다.

◇금융 당국이 금리 인상 판 깔아… 5대 은행, 22회 올렸다

지난해 7월 2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임원 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 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가 안정되던 가계 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월별 가계 부채 증가 폭이 5조원에 육박할 정도가 되자, 은행들에 대출을 자제하라고 경고를 날린 것이다. 이어 금감원은 국내 은행 17곳 부행장을 불러 모아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달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당시 은행 가계 대출 급증엔 정부 책임이 컸다. 6월 주택 가격 상승 경고음이 울렸을 때, 예정대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2단계 규제를 7월에 시행했어야 하는데, 정부는 9월로 돌연 연기해 버렸다. 7월 들어 가계의 대출 수요가 폭발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은행에 ‘대출을 줄이라’며 몰아세운 것이다.

◇대출 옥좨 집값 잡겠다는 관치

은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 8월 사이 국내 5대 은행은 모두 22차례 금리를 올렸다. 은행별로 두 달 동안 평균 5차례 이상 금리를 올린 것이다. KB국민은행은 두 달 만에 대출 금리가 1.13%포인트 올랐고, 신한은행은 1.3%포인트, 우리은행도 1.4%포인트가량 올랐다. 반면 예금 금리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7월에 0.43%포인트였던 5대 은행 예대 금리 차 평균은 9월 0.73%포인트로 확 올랐다.

이 원장의 관치 발언은 계속됐다. 작년 8월 27일에는 TV에 출연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가계 부채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은행에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작년 10월 11일에는 한국은행이 38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자, “금리 인하가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으로 이어져 가계 부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가계 부채 위험이 지속되는 경우 필요한 감독 수단을 모두 활용해 적기에 과감히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수차례 이어진 이 원장의 발언은 은행들에 가계 대출 억제라는 핑곗거리를 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금리를 올리는 게 원래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데, 금감원장이 공개적으로 올리라는 사인을 줬으니 눈치를 덜 본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7월만 해도 평균 연 3.5% 선이던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12월에는 4.25%로 올랐다. 하지만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를 핑계로 예금 금리(1년 정기예금 기준)는 연 3.38%에서 3.12%로 0.26%포인트 정도 내렸다. 예대 금리 차는 0.43%포인트(작년 7월)에서 1.17%포인트(작년 12월)로 벌어졌다. 이렇게 거둔 이익은 은행을 거쳐 고스란히 금융지주 금고로 들어갔다.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시중은행들은 예대 금리 차로 5조6538억원(신규 가계 대출 기준) 수익을 거둬들였는데, 만약 예대 금리 차가 7월 수준인 0.43%포인트에 멈춰 있었다면 수익이 3조2700억원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반기 예대 금리 차가 벌어진 덕에 은행들이 2조원 넘는 이자 수익을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올해도 기록적 은행 수익 전망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1분기(1~3월) 순이익 전망치는 총 4조8858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작년 1분기(4조2915억원)보다 14% 늘어난 규모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등 금융 당국 수장들이 올해 들어 뒤늦게 기준금리 하락에 따라 대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부동산 열풍 탓에 가계 대출 증가 폭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예대 금리 차는 1.3%포인트 수준으로 작년 말보다 오히려 커졌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예대 금리 차가 전반적인 금융 소비자 후생을 악화시키고 가계 금융 비용을 늘려, 사회 전반의 소비 여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금융 당국은 대출 공급을 제한하려 하고 소비자들의 대출 수요는 여전히 높기 때문에, 은행이 대출 금리를 적극적으로 낮추게 할 유인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