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 311만명을 대상으로 전기·수도·가스 등 공과금과 화재보험료를 50만원까지 대신 내주기로 했다. 작년보다 카드 소비를 늘린 소비자들은 증가액의 20%를 월 10만원 한도 범위에서 온누리상품권 형태로 돌려준다. 내수 부진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경영 부담을 덜면서 소비도 진작시키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18일 국무회의를 열고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해 오는 22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이번 추경은 산불 대응과 활주로·싱크홀 사고 방지 등 재난·재해 대응 3조2000억원 통상·인공지능(AI) 지원 4조4000억원, 소상공인 지원과 소비 진작책 등 민생 지원 예산이 4조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또 추경 편성에 따른 추가 국채 발행 이자와 10월 말~11월 초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경주 정상회의 비용, 21대 대통령 취임식 비용 등에 3000억원이 투입된다.
◇예비비 1조4000억원 증액
정부는 산불 진화 체계 개선을 위해 산불 진화용 헬기 6대를 2027년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산불 피해를 본 영남권에 신축 매입 임대 주택 1000채를 공급하고 피해 주민들이 주택 복구 목적으로 대출을 받을 때 저리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또 재난·재해 대응을 위해 정부 비상금인 예비비를 1조4000억원 조성하기로 했다. 작년 말 야당 단독으로 삭감한 올해 예비비 2조40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복구되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상호 관세 부과로 피해를 입는 수출 기업들을 위한 정책금융 규모는 25조원 늘어난다.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 정부가 출자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전 세계적 AI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AI의 핵심 장비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정부가 엔비디아로부터 1만장 확보하기로 했다.
◇소상공인 공과금·보험료 대신 내준다
소상공인들이나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추경 항목은 4조3000억원의 민생 지원 예산이다. 먼저 정부는 1조6000억원을 들여서 연 매출 3억원 이하 소상공인 311만명을 위한 ‘부담 경감 크레딧’을 만들기로 했다. 소상공인들이 신용카드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등 공과금이나 보험료를 결제하면, 나중에 정산할 때 정부에서 대신 납부해주는 제도다. 1인당 연 5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준비 기간을 거쳐 이르면 7월부터 시행한다. 9월에 30만원, 10월에 30만원의 공과금·보험료가 든 경우 9월분 30만원, 10월분 20만원 등 총 50만원을 지원받는다.
정부는 또 식당·온라인몰 등에서 쓴 카드 소비액이 작년보다 늘어난 경우 증가분의 2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주는 ‘상생페이백’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월 한도는 10만원, 연말까지 총 한도는 30만원이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 쿠팡·네이버 쇼핑 등 거대 이커머스, 자동차 구매 등은 제외된다. 연 매출이 30억원 이하인 사업자에게 구매한 경우만 대상이다. 시행 시기는 미정이다.
◇새 정부 들어 2차 추경 가능성
추경 재원 가운데 8조1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나머지 4조1000억원은 기금 여윳돈 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번 추경 편성으로 올해 말 국가 채무는 1279조원으로 당초 전망치(1273조원) 대비 6조원 늘어난다고 정부는 밝혔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경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최소 15조원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민주당이 추경 증액을 요구할 경우 수용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추경 목적과 부합하면 아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려 한다”고 했다.
경기 둔화 폭이 당초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6월 초 새 정부가 출범하면 2차 추경이 편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추경과 별개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2차 추경은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민주당이 집권하면 최소 30조원 정도의 추경안을 마련해서 지역화폐 발급도 담고 확대 정책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