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협상은 1기 정부 때보다는 빨리 마무리 되겠지만 길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이든 개인 투자자든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관세 협상 영향을 적게 받는 조선·방산·원전 부문을 주목할만 합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글로벌리스크팀장은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국가간 무역 협상은 1~2년씩 걸리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상징성이 있는 캐나다, 멕시코, 한국, 베트남 등 몇몇 나라와 먼저 협상을 끝내고 그 결과를 다른 협상의 기준으로 삼아 빨리 끝내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팀장은 지난 2002년 한국경제연구원에 입사한 뒤 주로 금융경제와 산업정책에 관해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인협회 산하의 ‘트럼프 2.0 태스크포스’ 실무 책임자도 맡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관세 현황은?
“한국에서 수입하는 알루미늄, 철강, 자동차에 25% 세율의 품목별 관세가 붙었다. 지난 4월 2일에 발표된 상호관세 25%는 90일 유예기간을 두고 협상 중이다. 품목관세와 상호관세는 중복 부과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다른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나 스마트폰의 관세율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관세 이외에 다른 무역 제재도 공개되지 않았다.”
―관세 부과는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3가지 경로를 통해 악영향을 준다. 첫째, 한국 기업의 미국 직수출이 줄어든다. 작년에 분석해보니 미국이 10%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대미 직접 수출이 13.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둘째,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서 한국 중간재의 중국 수출이 감소한다. 셋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도 위축된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도 이번에 각각 46%, 32%의 높은 상호관세율을 부과받았다.”
―3가지 경로 중 어떤 것이 가장 피해가 큰가?
“직접 수출이다. 그 다음이 중국을 통한 경로이다. 중국이 10%의 관세율을 적용받고, 한국 기업이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가 25%의 관세율을 적용 받던 때에 예측해 보니 중국 10%가 우리 수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만약 전세계가 꼭같이 10% 관세율을 적용 받는다면?
“한국이 반드시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직접 수출이 13.6% 감소하지만, 일본은 26.9%나 줄어든다. 관세 인상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미국 소비자들이 사게 되는데, 한국 제품이 다른 나라 제품보다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도요타 자동차 등 고급 제품들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측면도 있다. 중국은 60%의 관세율을 적용 받는다는 가정 하에 예상해 보니 대미 수출이 49.2% 감소했다.”
―한국의 사정이 다른 나라보다 낫다는 뜻인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세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수출 물량은 줄어들고 수출액도 감소하니 한국에 피해가 없을 수 없다.”
―트럼프 관세 충격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성장률은 당연히 하락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수출을 주요 성장 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작년에 전망할 때 올해 1.7%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호관세가 발효되면 더 낮춰야 할 것 같다. 경제가 식으면 대체로 물가가 하락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물가가 하락하지 않을 수 있다. 환율 수준이 중요하다.”
―환율은 어떻게 될까?
“1달러당 1400원 이상의 고환율이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수출이 안되면 경제성장도 안되고 원화 가치가 하락(환율은 상승)하면서 고환율이 지속된다. 그 결과 원유 등 수입 제품의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제가 안좋은데도 물가가 하락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하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합의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물가만 오른다는 의미라면 그런 상황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 상호관세가 그대로 실현되면 결과는?
“세계경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미국경제도 안좋아져서 달러 가치도 장담할 수 없다. 1929년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전세계 무역 위축으로 수출이 안되고, 기업들이 망가지면서 실업자가 늘어나며, 국민들의 소득도 감소한다. 노년층이나 연금생활자는 소득은 그대로인데 오른 물가 때문에 실질 구매력이 하락한다. 젊은이들은 취직이 잘 안 될 것이다.”
―트럼프가 발표 수준의 관세율을 관철시킬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중국을 제외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온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든 협상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중국에서 수입을 못하게 되면 다른 대체 수입국가를 찾아야 미국 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베트남, 인도 등이 중국을 대체할 것 같다.”
―중국은 어떻게 미국에 맞설까?
“미국이 우방국을 멀리하는 사이 그들을 우방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 미국 농산물 수입 금지, 희토류 수출 금지,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중국의 장남감 수출 금지 등을 통해 미국 민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은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 이후로 지속된 ‘중국 때리기’에 맞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내수를 키우고 우방국을 많이 만들면서 자생력을 키워왔다. 미국에 대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우방국을 잃어버리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우방국을 얻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실질적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그의 목표도 달성되기 어렵다고 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의 무역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처럼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관세 협상을 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한국에 추가로 요구할 조치는?
“비관세 장벽 제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회사 거래고객 정보의 해외 이전, 구글 맵의 한국 내 사용 허가 등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 차원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빨리 해서 기업 활동을 안정시켜야 한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등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제시해 가장 낮은 관세율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각국마다 급변하는 무역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세계적인 통상 규칙이 무너져 각국마다 새로운 무역 장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들이 이러한 통상 대응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하나?
“관세 전쟁의 불확실성이 언제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위험) 범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장기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 이번 위기를 기회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도 미국이 망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목할 만한 업종이나 기업은?
“조선업, 방위산업, 원전산업은 관세 파동과 상관 없이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4년 동안 이러한 흐름은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