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3법이 정말 우리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다시 뛰는 법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신념에 가득찬 이들에게 무슨 대화가 통하겠는가.”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6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등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 대표는 김진표·양향자·오영훈·신영대 의원 등과 경총회관을 방문했다. 공식 행사명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경총 간담회’였다. 경영계 측에선 경총 손경식 회장과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장동현 SK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오성엽 롯데지주 사장, 김창범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30분으로 예정됐지만, 예정보다 긴 45분 동안 열렸다. 하지만 행사의 시작인 ‘인사말’에서 재계와 여권의 평행선 달리기가 계속될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손 회장은 이 대표 앞에서 재계에서 기업규제 3법이라고 부르고 정부 여당에서 공정경제 3법이라고 이름 붙인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한 우려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손 회장은 이 대표가 총리 시절 막걸리 회동을 함께 한 일화를 꺼낸 뒤 곧장 기업규제 3법이 기업 경영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3법과 관련 없는 이야기로 상당 부분의 인사말을 채웠다. 이 대표는 손 회장이 회원사의 만장일치로 경총 회장에 연임했다는 얘기와 50년 전 국민소득이 280달러에 불과했는데 이후 100배가 커졌다는 얘기, OECD 회원국의 2분기 성장률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나았다는 얘기를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추석 연휴 동안 코로나 진단 키트 생산공장을 방문했다는 말도 꺼냈다. 경제계에서 듣고 싶었던 3법 관련 의견은 인사말 마지막 부분에 나왔다. 이 대표는 “기업계의 우려를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고 보완할 건 보완하겠다”면서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외국의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을 노리도록 틈을 열어준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공정거래 3법은 우리 기업의 건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기업을 골탕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공개된 모두발언만 보면 민주당이 혼나러 온 줄 알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말부터 조목조목 3법의 부당함에 대해 지적한 손 회장을 향한 뼈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비공개 대화에서도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기업 사장단은 한 명씩 돌아가며 기업규제 3법의 문제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이들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 상향,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에 대한 문제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영과정에서 헤지펀드 등 기업에 대한 공격 우려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글로벌 무대에서 기업이 잘 될 수 있도록 환경개선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인 부담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등의 말도 쏟아냈다.
하지만 민주당측 참석자들도 일관되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들은 3법이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뛰게 하는 법이라고 초지일관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정책은 기업 부담정책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우리 경제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또 민주당은 당내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선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뿐 아니라 언론에서 계속해서 3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세게 하니 뭔가 듣는 모습이라도 보이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미 답을 정해놓은 상황에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답을 얻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