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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지식산업센터에서 사업하는 K사장은 최근 큰 충격을 받았다. 사업장이 비좁아 경기도 내 산업단지로 이전 계획을 세웠는데 젊은 직원들이 사표를 내겠다며 반발해 결국 이를 포기해야 했다. K 사장은 “젊은이들에게 산업단지는 공장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을 뿐 변변한 문화시설이나 산책할 만한 공간조차 없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더라”고 했다.

산업단지는 여전히 한국 제조업의 중추다. 최초의 산업단지인 서울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를 시작으로 50년 넘게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 생산 제품도 가발, 봉제 완구, 의류 등 노동 집약적인 제품에서 반도체, 자동차, 전자, 기계, 화학 등 기술 집약적, 자본 집약적인 산업으로 변해왔다.

산업단지엔 10만여 기업과 근로자 222만 명이 몸담고 있다. 이들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막대하다. 생산은 국내 제조업의 67.0%, 수출은 67.3%(2018년 12월 기준)를 담당한다. 산업단지가 전체 생산과 수출의 3분의 2를 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안고 있다.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낡은 공장들이 많고, 대기업과 중견기업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이 이어지면서 가동률이 하락하고 생산액도 줄고 있다. 더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낡고 불편하게 인식되고 있는 산업단지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시행하는 스마트 그린산단 프로젝트다. 기본 단계인 개별 기업의 스마트화(스마트공장)에서, 발전 단계인 산업단지의 스마트화(스마트산단)를 거쳐 심화 단계인 그린산업 융합 미래형 혁신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기존 스마트산단에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정책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융합한 개념이다.

스마트산단은 데이터의 연결과 공유를 통해 기업 생산성과 근로자 삶의 질 향상, 신산업을 창출하는 활력 넘치는 산단을 의미한다. 이런 스마트산단에 제조업 정책의 세계적인 흐름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그린 정책을 결부한 게 스마트그린산단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도 만들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스마트그린산단 정책이 우선 적용되는 곳은 창원, 반월·시화, 남동, 구미, 광주 첨단, 전남 여수, 대구 성서 등 국가산업단지 7곳이다. 목표는 제조업이 모여 있고, 고탄소·저효율 에너지 다소비 지역이자 환경오염 다발 지역인 산업단지를 첨단·신산업이 육성되는 친환경 제조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세부 추진 전략은 산업단지의 3대 구성 요소인 산업·공간·사람을 중심으로 산단별 특성을 고려해 디지털 전환·에너지 혁신·친환경화를 중점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정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낡은 산업단지를 첨단 스마트 공장 지대로 변모시키는 스마트 그린 산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 공장으로 변모한 반월시화단지의 공장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첫째, 산단을 디지털화해 첨단 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디자인 제조혁신센터, 공정혁신시뮬레이션센터, 혁신데이터센터, 공유형 물류 플랫폼 등 가치 사슬(밸류 체인)의 단계별 디지털 지원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규제 개혁도 이뤄진다. 규제 및 제도 개선을 통해 산업 디지털 혁신 기반을 구축하고 창업-성장-사업 재편으로 이어지는 산업 전(全) 주기 성장을 돕게 된다. 실증 및 선도 사업 추진을 위해 규제자유특구 및 규제샌드박스, 네거티브존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예컨대 광주 첨단은 무인 저속 특장차, 경남 창원은 무인 선박, 대구 성서는 이동식 협동 로봇 등 3개 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식이다.

지금 미국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벤처 창업에서 시작한 역사가 짧은 기업이란 점이다. 이렇듯 창업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그린산단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산단을 창업의 전진 기지로 키울 계획이다. 산단 내 창업 활성화를 위해 시제품 상품화 및 판로 개척 등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과 창업 기업과 산단 입주 기업 간 연결을 지원한다. 산단 내 산업·에너지·안전·환경·물류 등 디지털 인프라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시너지도 일궈내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둘째, 그린과 디지털의 융합을 통해 저탄소 친환경 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저탄소·고효율의 에너지 혁신 선도 기지를 구축한다. 산단별 특화된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 친환경 청정 산단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합관제센터 구축으로 안전사고를 예방하게 된다. 물류의 스마트화·친환경화도 추진된다.

셋째, 청년 희망 키움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정책이다. 산단 재직자를 대상으로 디지털·그린 전환 교육을 실시하고 연구 인력을 육성·보급하게 된다. 현장 수요 맞춤형 산업 AI·빅데이터 전문 인력 프로그램과 연계해 인재를 공급한다. 예컨대 포항공대의 철강, 고려대의 전기전자, 서울대의 기계·에너지, 한양대의 자동차 부품 전문 인력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 밖에 문화·생활·복지 등 살기 좋은 정주 여건도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기존 스마트산단 7개를 스마트그린산단으로 전환하고, 2025년까지 이를 단지 15개로 늘린 뒤 전국으로 점차 확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일자리 3만3000개를 창출하고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을 0.6%에서 10%로 높이며 에너지 효율을 16%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단지 7개를 특화할 계획이다. 예컨대 △창원은 지능형 기계·로봇 등 디지털 융합 기계산업 △반월·시화는 첨단 부품 소재 산업, △남동은 소재 부품 장비 및 바이오헬스 신산업단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구미는 5G 선도형 전자 융합 산업 △대구 성서는 첨단 기계 금속 등 5대 디지털 융합 산업 △광주 첨단은 AI 기반 미래형 자동차 산업 △여수는 경량·첨단 소재 등 화학 산업 중심 자원 순환 및 신산업으로 특화할 계획이다.

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산단 입주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결국 디지털화와 그린화의 주체이자 활용자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선 기업인뿐 아니라 직원 등 종사자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산단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산학연 간의 협력도 필요하다. 세계 히든 챔피언의 거의 절반을 보유할 정도로 제조업 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아헨공대, 프라운호퍼 등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기업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독일 중소기업의 4차 산업혁명도 산학연 클러스터가 중심이 돼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그린산단 정책도 대학과 연구소 등 산학연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