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주물 공장이 밀집한 김포산업단지의 한 공장. 직원들이 펄펄 끓는 쇳물을 거푸집에 들이부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된 이날 작업은 오후 4시쯤 모두 끝났다. 예전엔 하루 5번 이상 쇳물을 끓여 작업했지만, 요즘은 하루 3번 작업하는 게 고작이다. 회사 관계자는 “자재인 고철값은 올랐는데, 물건 가격은 그대로”라며 “팔수록 손해가 쌓여 생산을 줄였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국제 원자재값 폭등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철광석·구리 등 주요 원자재값은 1년 새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완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대기업은 원자재값 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있지만, 중간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제품값을 올려 받기 쉽지 않다. 원자재값이 계속 치솟다 보니 중소 제조업체의 영업이익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12일 오전 수도권의 한 주물공장에서 직원이 용광로에 쇳조각 등을 부어 쇳물을 끓이고 있다. 원자재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중소기업 수익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4월 고철 가격은 작년 초 대비 50% 가까이 올랐다. /고운호 기자

◇원자재 급등에도 납품 단가 인상은 요원

철광석은 지난해 3월 t당 89달러였지만 올 3월엔 167달러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구리는 t당 5179달러에서 9005달러로 73.9% 급등했다. 이런 급등세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구리값은 올 들어서만 13% 올랐다.

경남에 위치한 합금 주조 업체 A금속은 최근 주요 원자재인 구리값이 급등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30% 이상 줄었다. 제품 판매가에서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9년엔 50%였지만, 지난해엔 60%까지 올랐다. 앉은자리에서 영업이익이 10%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대기업에 읍소해서 납품 단가가 10% 가까이 올랐지만, 그 사이에도 원자재값은 계속 치솟았다. 결국 지난해 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생산을 줄이고 직원도 5명을 내보냈다. 이 회사 조모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원자재값까지 폭등해 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살 사람만 있다면 회사를 팔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기 회복 기대감과 중국의 수요 확대로 원자재값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그 충격을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는 원자재 구입과 납품 계약 구조 때문이다. 원자재는 시장에서 그때그때 현금을 주고 사오는 구조라서 가격이 오르면 오른 대로 지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견·대기업 납품은 대부분 입찰이나 납품 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납품 단가가 미리 정해지면 원자재값 변동분을 반영할 수 없다.

연 매출 80억원대의 수도권에 위치한 한 전선 피복 제조 업체 대표 이모씨는 “원자재값 급등으로 1분기에만 6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해 원자재값 상승분의 일부라도 납품 단가에 반영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원청 업체는 ‘우리도 힘들다’ ‘적자 근거를 대라’는 등 온갖 구실을 대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中企 76% “원자재값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수출 중소기업 300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 상승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영향 조사’에 따르면, 원자재값 상승으로 중소기업 75.6%는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영업이익률이 10~30% 하락했다는 응답(37.4%)이 가장 많았고, 영업손실을 냈다는 응답도 4.8%였다. 그러나 원자재값 상승분을 납품 가격에 전액 반영한다는 업체는 100곳 중 9곳에 그쳤다.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는 중소 제조 기업의 폐업도 급증하고 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산업단지의 공장 처분 건수는 2019년 1484건에서 지난해 1773건으로 19.5%(289건) 증가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원자재값 상승분이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영업손실은 갈수록 악화하고 결국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