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올해 상반기에만 연간 수주 목표의 70% 이상을 달성했지만 각종 악재로 울상을 짓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값 고공 행진으로 하반기 조선용 후판(선박에 사용되는 두께 6mm 이상 철판) 가격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한 데다 조선업 불황이었던 2~3년 전 저가 수주한 실적이 현재 매출에 반영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올해 안에 눈에 띄는 실적 반등도 어려운 상태다. 여기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심사도 기약 없이 지연돼 조선 업계의 구조 조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최근 조선 업계의 수주 관련 뉴스가 쏟아지면서 마치 조선업에 훈풍이 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외화내빈 상태”라면서 “오히려 하반기 어닝 쇼크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배가 건조되고 있다. 최근 국내 조선 3사는 대형 수주 계약을 잇따라 맺고 있지만 후판 가격 인상, 만성 적자 등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현대중공업

◇후판가 인상에 조선사 시름 깊어

국내 조선 업체들은 올해 들어 대규모 수주 소식을 잇따라 전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14일 유럽 선사와 9100억원 규모의 초대형 LNG 운반선 4척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중공업도 이달 초 LNG 운반선 3척을 6500억원에 수주했다.

하지만 실제 조선 업체들의 경영 실적은 이런 상황과 온도 차가 있다. 올 1분기 현대중공업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전년 동기 대비 44.5% 감소한 영업이익 675억원을 기록했고, 대우조선해양은 영업손실 212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삼성중공업은 영업손실 5068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1분기까지 14분기 연속 적자를 보면서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무상감자까지 추진하고 있다. 하반기엔 조선 3사 모두 적자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조선 업계에 실적 부진 우려가 커지는 것은 하반기 후판 가격 인상 때문이다.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는 연간 두 차례(상·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해왔다. 상반기에는 t당 10만원이 인상됐다. 현재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포스코는 조선 3사에 후판 공급가를 t당 115만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 후판 공급가가 70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40만원 이상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후판 가격을 인상하면 이를 기준으로 현대제철을 포함한 다른 철강사들도 후판 가격을 줄줄이 올릴 가능성이 높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철광석 가격이 지난 5월 t당 237.57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여전히 20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조선용 후판 가격을 안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 업계는 비상 상황이다.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해 조선 업계 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현재 짓고 있는 선박들은 대부분 2~3년 전 조선업 불황 당시 저가 수주했던 물량”이라면서 “배를 만들어도 적자만 보게 생겼다”고 말했다.

◇현중-대조양 기업 결합도 요원

조선 업계 최대 이슈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해외 5국에 기업 결합 심사를 신청했다. 지금까지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에서는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EU(유럽연합)와 일본에서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EU집행위원회는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LNG(액화천연가스)선 부문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으로 올라가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두 회사가 합병 후 LNG선 사업 부문을 일부 매각 또는 축소한다면 인수합병 시너지가 줄어들 수 있다. 일본은 EU의 결정을 지켜보는 상황이다.

국내 공정위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일각에선 합병 이후 LNG선 독점에 따른 가격 인상 문제와 하청업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 강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조선 업계 한 임원은 “조선업이 회복되는 과정에 각종 암초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도 “올해 수주 실적이 매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1~2년간 어떻게든 버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