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임원 직급을 통폐합하고 있다. 특히 임원 첫 단계였던 이사·상무보 직급 자체는 기업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일부터 상무와 상무보 직급을 상무로 통합했다. 최근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한화그룹도 지난 8월부터 계열사별로 상무보 직급을 없앴다. 한화그룹은 상무보를 폐지하면서 기존 상무보는 상무로, 상무는 전무로, 전무는 부사장, 부사장은 사장으로 한 직급씩 올렸다. 한화 측은 “임원들의 책임감을 높이고, 의사 결정도 더 빨리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대기업들의 임원 직급 축소는 1~2년 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연말 인사에서 이사대우·이사·상무를 모두 상무로 통합해 6단계였던 임원 직급을 4단계로 축소했다. SK그룹은 그해 상무·전무·부사장 등의 임원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임원 직급 통폐합은 조직을 단순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임원 숫자도 줄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 임원 되기는 갈수록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헤드헌팅업체 유니코써치가 100대 기업의 직원과 임원 숫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은 2011년 0.95%에서 올해 0.76%까지 떨어졌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최근 대기업들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임원 직급별 단계를 단순화하고, 업무와 직책 위주로 조직을 운영한다”며 “결국 임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과거보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 직급을 통폐합하거나 직급 체계를 축소하는 움직임은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수평적 조직구조’ ‘신속한 의사결정’ ‘창의적 조직문화’를 주요 이유로 꼽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원 규모를 축소해 비용 절감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상무보A와 상무보B를 상무보로 통합하면서 임원 직급을 기존 6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했다. 르노삼성자동차도 지난해 7월부터 기존 ‘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로 이뤄진 임원 직급을 전면 폐지하고 ‘본부장’과 ‘담당임원’으로 줄였다. 대한항공은 불필요한 결재 라인 간소화를 위해 2019년 임원 직급 체계를 기존의 6단계(사장·부사장·전무A·전무B·상무·상무보)에서 4단계(사장·부사장·전무·상무)로 축소했다.

대기업들이 임원 직급을 잇따라 통폐합하면서, 전체 대기업 임원 수는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상무보 직급을 없앤 현대중공업의 올 연말 임원 승진 규모는 총 75명으로, 지난해 115명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한 재계 인사는 “임원 단계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규모도 줄어 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원이 될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2011년 100대 기업 직원은 69만6293명이었고 임원은 6610명(0.95%)이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직원 숫자는 83만7715명으로 증가했지만 임원 수는 6361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100대 기업의 임원 1명당 직원 수는 131.7명으로 0.76% 확률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경기 불황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기업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조직을 슬림화하는 게 대세가 됐다”면서 “다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경직된 노동유연성으로 인해 함부로 직원을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우선 임원 수부터 줄이는 방식을 통해 잉여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