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 회장은 3일 임직원에게 공개된 동영상에서 중장기 경영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문화와 플랫폼, 건강한 삶, 지속가능성을 4대 성장 엔진으로 삼아, 2023년까지 10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CJ

“최근 3~4년 사이 우리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정체의 터널에 갇혔습니다.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과감한 의사결정에 주저하며, 인재를 키우고 새롭게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습니다.”

이재현 CJ 회장이 3일 동영상을 통해 CJ그룹의 새 비전을 밝혔다.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회사 비전을 설명한 건 지난 2010년 ‘제2도약 선언’ 이후 11년 만이다. 이 회장의 비전 발표는 이처럼 신랄한 자기 반성으로 시작했다. 이 회장은 밝은 갈색 재킷에 노타이 정장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서서 약 7분간 비전 발표를 했다. CJ의 현재를 ‘성장 정체(停滯)’로 규정한 이 회장은 ‘C.P.W.S’, 즉 문화(Culture), 플랫폼(Platform), 건강한 삶(Wellness),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분야를 CJ의 4대 성장 엔진으로 삼고 2023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핵심 인재 육성을 위해 인사 조직을 혁신하고 파격 보상을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회장이 직접 비전 설명에 나선 것은 지난 3~4년간 CJ 그룹이 뚜렷한 미래 사업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절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CJ의 4대 성장엔진‘C.P.W.S’

◇정체 넘으려 4대 엔진에 10조 투자

CJ는 이 회장이 내건 키워드 ‘C.P.W.S’에 맞춰 AI 중심 디지털 전환에만 2023년까지 4조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문화 부문에선 CJ제일제당의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를 중심으로 만두·치킨·K소스 등 글로벌 전략 제품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또 스튜디오 드래곤에 이어 드라마·예능 등의 장르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멀티 스튜디오를 설립, 여기서 제작한 상품들로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플랫폼 분야에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티빙’을 K콘텐츠 해외 수출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넷플릭스처럼 ‘오징어게임’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티빙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이용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올리브영이나 CJ온스타일(홈쇼핑) 등 뷰티·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보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퍼 플랫폼으로 키우는 전략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건강 부문에선 CJ제일제당의 차세대 치료제 중심의 바이오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친환경·신소재·미래식량 등 혁신 기술 기반의 신사업도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올해 안에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PHA) 전용 공장을 인도네시아에 완공하고 양산에도 돌입한다.

이 회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인재”라며 “탁월한 성과에 대해 최고의 보상을 하겠다. 최고 인재들이 오고 싶어 하고, 일하고 싶어 하고, 같이 성장하는 CJ를 만들겠다. 이는 저의 강한 의지”라고 했다. 이를 위해 인사 조직을 혁신해 나이·연차·직급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발탁하겠다고 했다. 임직원이 소속 계열사와 직무에 제한 없이 그룹 내 다양한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잡 포스팅(Job Posting)’, ‘프로젝트·태스크포스(TF) 공모제’도 시행한다.

◇”이대론 생존 어렵다”는 절박함 드러내

이재현 회장이 이례적으로 비전 발표에 나선 것에 대해 지금 현행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이 배경에 있다고 CJ그룹 측은 밝혔다. 식품·엔터테인먼트·물류 등 기존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데다 그룹의 미래를 이끌 만한 새로운 성장 동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스스로도 이날 미래 성장 동력 부재에 대해 “저를 포함한 경영진의 실책”이라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연초가 아닌 11월에 전격적으로 비전을 발표한 것은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회장이 지난 8월부터 미래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고민해왔다”고 말했다.